●판결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강도질을 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끔찍한 짓이라고. 밤중에 숲 속 같은데서 강도에게 찔려 죽는 사람도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이 구원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절대로 놓지 않는 법이거든. 예를 들어 목이 이미 잘렸어도,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도망을 치거나 살려 달라고 도움을 청하거나 하거든. 이런 최후의 희망이 있으면 열 곱절이나 편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을, 사형선고라는 것은 이런 희망을 확실히 빼앗아 버린단 말일세. 일단 선고가 내리면, 이제 달아날 길은 절대로 없는 것이고, 바로 이 점에 정말 끔찍한 고통이 있는 거야. 이보다 더한 고통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걸세. 전쟁터에서 병사를 끌어내다가 대포 앞에 세워 놓고 그에게 쏜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을 걸세. 그런데 이 병사에게 확실한 사형선고를 낭독해 주면 그는 아마 미쳐 버리든가 울음을 터뜨리든가 하고 말 걸세.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미쳐 버리지 않고 그것을 견뎌 낼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럼 정말로 내가 이 사람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요? (공작을 가리키며) 그리고 이 사람은 본인이 아직도 유모가 필요한 처지인데 어떻게 결혼을 한다는 거죠? 아마도 저기 있는 장군님이 이 사람의 유모가 될 거예요. 한번 보세요, 벌써 저렇게 찰싹 달라붙어 있잖아요! 공작님, 당신이 결혼하려 했던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보세요. 당신의 약혼녀는 이렇게 돈을 받았어요, 너무도 방탕한 여자여서요. 그런데도 이런 여자와 결혼을 하려 하시다니요! 아니 어째서, 울고 계시는 거예요? 대체, 뭐가 슬프다는 거지요? 그러지 말고, 웃어 보세요, 나처럼 이렇게요.” 이렇게 말하는 나스타샤 필리포브나의 양 볼에 두 줄기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어쨌건 한 가지 명백한 것은 이 가난한 기사에게는 자기의 숙녀가 어떤 사람이건 무슨 짓을 하건 그런 것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그가 그녀를 선택했고, 그녀의 ‘순결한 미’를 믿는다는 것만으로, 또 그가 이미 그녀 앞에 영원히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그에겐 충분한 거예요. 설사 나중에 가서 그녀가 도둑년이라는 게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그 여자를 믿고, 그녀의 순결한 미를 위해 창이 부러질 때까지 싸울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이 경탄할 만한 인물 속에 순결하고도 고상한 한 기사가 품었던 중세의 기사도적이고 플라토닉한 사랑의 위대한 사상을 구현하고자 했을 거예요. 물론 이것은 하나의 이상일 뿐이지만요. <가난한 기사>에서는 이 감정이 극에 달해 금욕주의에까지 도달해 있어요. 그러나 이런 감정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이런 감정들은 그 자체로 심오하고, 한편으로는 찬양할 만한 특성입니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새삼 돈키호테에 대해 말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가난한 기사>는 바로 돈키호테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우스꽝스런 사람이 아니라, 심각하고 진지한 사람이지요. 한마디로, 진지한 돈키호테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처음엔 저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웃기만 했지만, 지금은 <가난한 기사>를 사랑하고 있으며, 중요한 점은 그의 공적을 존경하고 있다는 겁니다.”
●“들어 보세요! 말만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전 잘 압니다. 모범을 실례로 보여 주는 것이 더 낫고, 시작을 한다면 그건 더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 이미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과연 정말로 불행할 수가 있을까요? 제가 행복을 누릴 힘이 있다면 지금 느끼는 이런 슬픔이나 불행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저는 한 그루의 나무 옆을 지나갈 때 그것을 보고 행복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를 사랑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을 느낍니다! 오, 전 제대로 표현할 재주가 없습니다만… 하지만 가장 힘들고 의기소침한 사람조차 발자국마다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갓난아기를 보십시오, 새벽노을을 보십시오, 저 들에 자라고 있는 한 포기의 풀을 보십시오, 여러분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저 눈을 보십시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