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일터를 잃은 사람들과 함께 투쟁을 해온 빈민활동가.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 주변과 동대문운동장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987년부터 보석 세공 공장에서 일하며 사회의 부조리함에 눈 뜨게 됐고, 그 이후 노동자와 활동가를 병행하며 살아왔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부의 탄압에 맞서면서도 20년 넘게 현장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 차별 없는 사회를 꿈꿨기 때문이다. 특히 노점상 단속과 철거와 관련된 문제에 관이 많다. 1995년부터 빈곤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고 ‘전국노점상연합’에서 활동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1999에서 2009년까지 ‘전국빈민연합’의 사무처장을 맡으며 노점 단속 현장뿐 아니라 주택과 상권의 철거 지역에서도 활동했다. 지금은 ‘빈민해방실천연대’ 집행위원장, ‘민주노점상 전국연합’의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인기는 현장에서 투쟁하는 것만큼 기록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첫 책 《가난의 시대》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각 정권별 도시빈민의 현황 과 투쟁의 역사를 담았다. 각 정권들이 시행한 정책들이 시민들의 주거, 생활 문제와 어떻게 맞물려 갈등을 양산했는지 살펴봤다. 이번 책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용산, 청계천, 포이동, 상도동, 동자동 등 철거와 개발 문제로 뜻 하지 않게 집과 일터를 잃은 사람들이나 극빈층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찾아가 공간이 역사와 문제점,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최인기의 블로그 '사노라면(http://blog.naver.com/takebest)’에 가면 빈민 문제의 심각성과 빈민운동의 현장을 더 볼 수 있다.
“저의 인생에서 청계천은 가장 소중한 공간입니다. 이제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청계천은 계속 바뀌어 나갈 것입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하지만 일방적으로 바뀌고 파헤쳐 지는 관행은 이제부터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 너무나도 바쁘게 돌아왔습니다. 뒤를 돌아보고 천천히 하 늘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도시와 환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과 과거를 보존하고 없는 사람 함께 더불어 공존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청계천의 역사를 되짚는 방법, 35쪽)
“눈부신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앞 만보고 달려오면서 부수고 세우는 일에 익숙해졌는지 모르겠 습니다. 한국의 개발과 성장은 기형적인 도시를 만들면서 과거의 흔적들을 깡그리 파헤치거나 지워나갔습니다. ‘동대문운동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대로의 모습을 살려 운동장을 수리하고 보전하여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쉼터로 만드는 건 정말 불가능했던 걸까요? 천문학적인 국민의 혈세로 건설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가 저의 눈에는 장소 역사성과 무관한 하늘에서 내려앉은 희한한 UFO나 거북의 등딱지처럼 보입니다. 저는 국적불명의 그 건물이 그저 불편하기만 합니다.”(동대문역사문화공원, 사라진 근대 스포츠의 현장, 48~49쪽)
한때 서울에는 2,000년 초까지 만해도 약 2만 명 가까이 치 솟던 노점상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서울시의 공식 자료도 8,000개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알려져 있지요. 서울시 노점상관리대책의 본질은 신 발생 노점의 억제와 기존 노점상의 축소를 위한 대책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노점상에게 당근을 던져주는 척 하다가, 결국에는 용역반을 동원해 단속이라는 채찍을 휘두르는 일이 노상 벌어집니다. 결국 노점상은 오래전 뒷길의 피맛골처럼 밀려나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 네요. 거리에 노점상이 사라지는 게 정말 좋은 걸까요? 걷는 불편함이나 복잡함은 사라지겠지만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 간의 교감이나 즐거움, 추억도 한꺼번에 사라지는 겁니다. 노상이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 안정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는 노점상의 바람이 그렇게 지나친 욕심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거리에서 사라진 노점상은 어디로 갔을까?, 68~69쪽)
포이동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하늘은 ‘타워팰리스’가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가장 부자들만 모여 산다는 타워팰리스가 그들만의 철옹성처럼 하늘 높이 솟아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한때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이 서울의 가장 비싼 노른자 땅 강남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게다가 아름다운 양재천이 굽이쳐 흐르고 있으니 조망권이 좋다는 말도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오래전 황무지였던 이곳을 개척하면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은 주변의 변화와 무색하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주변의 땅값이 하루가 다르게 천문학적으로 뛰기 시작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삶의 처지는 그대로입니다. 마치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백인들에게 밀려 나듯이 포이동의 원주민들은 현재까지도 배제되거나 소외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