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와 동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주도 중문, 우도중학교 및 서귀포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지냈으며,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이야기 세계사2》가 있으며, 공역으로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공저로 《바이마르 공화국》 등이 있다.
과거의 역사를 변할 수 없는 절대적 진실 그 자체라고 확신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라도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고 의미가 부여된 지식체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의식해야 한다. 모든 사물과 사건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경중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현재의 사회적 힘의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기록되어 전해진 역사와 오늘의 세상사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습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보로 취급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마음가짐이다. 우리의 시각에서 역사를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노력은 유리한 가치 체계를 세우고 그 토대 위에서 우리의 삶과 후대의 삶을 꾸려 가겠다는 의지의 표명과 같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중요성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직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만이 우승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우승자를 부러워했다. 인간이 이룩한 대단한 업적을 신의 축복의 결과로 보았던 것이다. 이들은 인간이 범하는 많은 잘못 가운데 교만, 즉 ‘휘브리스hybris’를 특히 죄악시했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일본 야구 감독인 호시노가 한국 야구팀에게 보인 교만한 태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보기에 큰 대가를 치러야 마땅할 범죄행위였을 것이다. 1896년, 프랑스 귀족 쿠베르탱은 없어졌던 고대 올림픽을 부활시켰다. 대규모 전쟁이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전쟁 중단과 평화를 외치며 부활을 주도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날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은 20세기 초 유럽을 중심으로 부활했다. 부활한 올림픽은 모든 인류의 평화를 상징했다. 그러나 인류를 전대미문의 참화로 내몬 히틀러가 베를린 올림픽을 인류 축제의 놀이마당으로 꾸민 사실은 올림픽이 순수한 스포츠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1부 고대, 올림픽
과거 우리 사회는 여가에 휴식을 즐기는 대가로 별도의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카페를 이용하려면 정담을 나누든 휴식을 즐기든, 또는 업무를 처리하든 일정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음식을 나누며 무료로 휴식을 즐겼던 우리가 카페에서 적지 않은 돈을 쓴다는 것은 개인의 휴식이나 인간적인 만남에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본주의는 이윤 창출을 염두에 두고 사람들의 만남까지 상업화하고 있는데, 우리들의 뇌리 속에는 이것이 당연한 것으로 각인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불나방처럼 늘어나는 카페 개업 현상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며 서구 문화의 파괴력에 다시 한 번 움찔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더 시설이 좋고 커피가 맛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우리는 어느 단계에 이르러야 더 멋있고, 더 맛있고, 더 분위기 좋은 것을 강박적으로 추구하지 않게 될까? -2부 카페, 커피 한 잔의 자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