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원래는 1948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광주의 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와 서울의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197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행정고시를 거쳐 졸업과 동시에 경제개발계획 업무를 담당하던 옛 경제기획원에서 사무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수립에 참여하였다. 1975년 보건사회부로 전근되어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을 도입하는 실무책임자로 일하였다. 1977년 공무원을 사직하고 친구 따라 당시 청년벤처기업이던 율산실업(주)으로 옮겨 2년여 무역과 해외건설의 일선에서 젊음을 불태우다가 잘 안 되어 2년여 실의와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초년고생을 톡톡히 한 셈이다. 1981년 미국 미시간대학교 Law School 대학원에 진학하여 통상법을 전공하고 1984년 필리핀 마닐라에 소재한 국제기구 Asian Development Bank에서 Counsel(법무자문역)로 제2의 출발을 하였다. 10년 동안 아시아 각국의 경제개발 지원에 관련된 법무업무를 담당하고 업무상 많은 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하였다. 1994년 귀국하여 지금까지 21년째 인하대학교에서 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편 전공과 관련된 대외적 활동도 활발히 한 편이다. 정부에서는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무역위원회 위원과 위원장(1999-2001)으로 봉사하였으며 민간부문에서도 우리은행, 외환은행, 교보증권 등 금융기관의 사외이사로 일하였다. 2005년 뜻밖에 참여정부의 부름을 받아 노무현 대통령 경제보좌관으로 2년 가까이 청와대에서 일하였다. 2006년 말 학교로 돌아와 강의를 하고 있으며 금년 말 정년퇴임할 예정이다.
2014년 2학기를 마치면 21년 동안의 강단을 떠나 정년을 하게 된다. 100세 시대라는 요즘 65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일하는 삶은 일단 마감을 하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40여 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등산에 비유하면 그동안 열심히 올라왔다. 정상의 희열을 만끽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 언덕을 내려갈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 현관에 조그만 시화가 하나 걸려있다. 고은 시인의 짧은 시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제 그동안 열심히 오르느라고 돌아보지 못한 나무, 꽃, 돌들과 친구 친지들을 다시 발견하고 싶다.
그동안 이런저런 기회에 여기저기 썼던 글들의 기록이 내 컴퓨터에 남아 있다. 내 삶의 폭풍과 노도의 시대라고 할 20대, 30대의 기록은 거의 없어져 아쉽지만 그래도 40대 이후의 글들이 많이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 글들을 모아 조그만 책으로 묶어 친구와 친지들에게 정년의 선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 하는 교수가 책을 낸다면 기념논문집이나 전공서적을 내야지 무슨 산문집인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철학이나 인문학도 아닌 법과 경제에 관한 한참 지난 논문들을 모아본들 누가 열심히 읽어주겠나. 가장 가까운 집사람부터 고개를 돌리겠지.
그래서 무겁고 긴 전공 관련 글들은 다 빼고 가볍고 짧은 산문 중심으로 엮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때 그 글” 정도로 보이는 것도 없지 않지만 어떤 글들은 시간은 지났지만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도 시의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때그때의 삶의 현장에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나 당시의 나를 보여 준다는 의미가 있겠다.
원래 생각은 비매품으로 몇 백 부 정도 찍어 친구친지들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법대를 같이 나왔지만 평생을 재야 한글학자로 살고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했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비매품은 책이 아니고 일반사람들도 사서 볼 만한 내용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래서 그냥 보통 책으로 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