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 왜 확신을 갖지 못할까? 다른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그 무언가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결단을 앞두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 더 이득일지 따지는 ‘영악한 머리’가 아니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용감한 심장’이 아닐까? (P.5_ 여는 글)
▷ 생각해보면 나는 오히려 ‘을의 자부심’을 더 자주 느꼈던 듯하다. 갑의 욕망이 드디어 만족되었을 때, 승리의 쾌감에 젖은 미소를 짓는 것은 갑이 아니라 오히려 을이다. 그 미소의 짜릿함은 지어본 자만이 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기 싸움에서 우리는 결국 실력 하나만으로 갑을 넘어오게 만든 것이다. (...) 불리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곪아터지지 않고 건강하게 지켜내는 것. 그것은 분명 자존심을 버리고 얻어낸 자부심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자존심만 있는 리더는 속이 썩어가지만, 자부심 있는 리더는 속부터 강해진다. (p.22_ 갑의 자존심 vs 을의 자부심)
▷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나의 투쟁사는 의외로 단순하다. 우선, 입사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한 시간을 온전히 자기계발에 쓰기 위해서다. 책을 읽든, 자료를 찾든, 어학공부를 하든, 어쨌든 하루 한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투자했다. 그러기를 30여 년 지속했으니, 꽉 채워 1년 3개월을 남들보다 더 공부한 셈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하기 위해 나는 매일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났다. (…)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해도 성실함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p.27_ 자부심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 사실 회사에서 가장 맷집이 좋은 사람은 사장이 아닌가? 클라이언트가 카운터 펀치를 휘두르면 직원들은 힘없이 휙휙 나가 떨어지겠지만, 사장은 충분히 버틸 힘이 있다. 그러니 사장은 좀 깨져도 괜찮다. 나는 기꺼이 샌드백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클라이언트가 어딘가 기압골이 상승했을 때, 내가 나서서 그 화를 받아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큰 놈’이 더 때릴 맛도 나는 법이다. 동네 식당에서도 손님이 화가 많이 나면 “사장 나와!”라고 소리치는 마당에 큰 회사라고 다르겠는가? (p.47_ 아랫사람 앞에서 비겁해지지 않는다는 것)
▷ 평소에 분명한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면 크게 망설일 일이 없다. 지금 내릴 결정이 원칙에 어긋나는지 아닌지만 판단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면 받아들이고, 어긋난다면 물리치면 그만이다. (…) 그런데 이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원칙을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라는 뜻이기도 하다. 말도 안 된다고 지레 쳐내버리지 말고 ‘정말 안 될까?’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p.72_ 본질 외의 모든 것은 바뀔 수 있다)
▷ 나는 아직도 매일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휘트니스 센터로 향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일찍 일어나는 걸 자랑하겠다는 겐가? 아니다. 진짜 자랑은 어느새 30여 년을 그렇게 지냈다는 사실이다. (…) 따뜻한 이불 속에서 달콤한 아침잠을 더 자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매일 새벽‘ 나가기 싫음’과‘ 나가야 함’ 사이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면서도 30년간 그 전쟁에서 승리해온 것이 대견하다는 것이다. 대체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새벽길을 나서려는 것일까? 건강관리를 하겠다는 것은 그저 핑계인 것 같다. 사실은 귀찮고 싫은 새벽운동을 거르지 않고 지속하겠다는 그 결심, 그리고 그 결심을 실행하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을 넘어서겠다는 테제(these)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침운동이란 마치 아침 예불이나 새벽 기도와 같은 의식인 셈이다. (…) 요점은 다만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한계상황에 도전하는 것이라 생각하자는 것이다. 매일매일 습관대로 일하는 것을 넘어 나 자신을 극복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자. (p.96_ 변화의 시간을 버티면 기회가 찾아 온다)
▷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한 사람만의 일’을 짊어지고 있는 리더의 자리는 참 외롭다. 결단 이후의 공과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공은 가능한 많은 직원들에게 돌리고, 과는 온전히 내 한 몸으로 짊어져야 한다. 리더도 인간인데 그런 책임의 무게가 어찌 달갑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이 나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리더가 있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를 하는 셈이다. 리더에게 있어 잘못된 결단을 내리는 것보다 나쁜 것이 아예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실상 결단은 타이밍이다. 이것이 최선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더라도, ‘최고의 차선’을 뽑아 들고 문제와 맞서는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p.122_ 결단,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 우리는 ‘인문학’에서 ‘학’이 아닌 ‘인(人)’과 ‘문(文)’에 집중해보자. 사람과 문화. 그러니까 인문학이란 사람의 문화, 그 오래된 삶의 무늬를 들여다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적 성찰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 내면에 소소하나마 어떤 돌풍을 몰고 와서, 오늘 나의 행동을 미세하게나마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인문학적 경험이 된다. 반면 별다른 지적 성찰 없이 표면적인 것만 접하고 말았다면, 아무리 대단한 인문학 고전을 읽었다 해도 가벼운 잡지책 한 권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p.161_ 통찰을 찾으러 인문학 속으로 들어가다)
▷ 자신들의 영역을 침탈당한 쥐들이 고양이를 방어하기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로 결정하지만, 그 쥐들의 왕성한 논의는 결국 헛된 공론으로 마감한다. 왜? 누가 어떻게 달 것인지에 대한 솔루션이 없기 때문이다. (…) 광고회사에서 ‘아이디어’가 갖는 위치가 정확히 이와 같다. 누구나 독특하고 참신한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생각이 항상 쓸모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효과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솔루션’이다. (p.189_ 그냥 아이디어가 아니라 ‘팔리는 아이디어’)
▷ 광고회사가 광고주의 눈치를 보며 끌려 다니는 이유가 단지 이른바 ‘갑을 관계’ 때문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핵심은 오히려 을의 자세에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전문가라는 확신을 심어주면 광고주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항상 두뇌가 반짝반짝 빛나도록 갈고 닦으면서 한발 앞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면 어떤 갑인들 믿고 따르지 않겠는가? 오히려 나는 을에 불과하다며 소극적인 자세로 임한다면 상대는 그 회사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연히 내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p.208_ 아이디어는 어떻게 솔루션으로 성장하는가)
▷ 솔직함은 분명한 매력이다. 하지만 CEO라면 단순히 솔직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실상 리더라면 감춰야 할 부분과 보여 줘도 될 부분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리더의 솔직함이 자칫 경솔함으로 흐르면 때로 큰 화를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솔직함이 말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면, 진정성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다. 물론 말도 하나의 수단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는 반드시 말이 아니어도 전해질 수 있는 진짜 실체, 즉 ‘가치’가 들어 있어야 한다. (p.244_ 솔직함보다 오래 가는 진정성의 힘)
▷ 2005년 말 우연한 기회에 성프란치스코 복지관을 후원하게 되었는데, 후원금 영수증을 받아 들면서 문득 작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승진이나 생일 등 축하할 일이 생길 때 화분을 보내는 대신 그 사람 이름으로 기부를 하는 것은 어떨까? (…) 언론과 기업들의 호평 덕분에 어느새 ‘뷰티풀 도네이션’은 하나의 기부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 돌이켜보면 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칭송을 들어도 내 스스로 알맹이가 빠져 있다고 느끼면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 알맹이란 내 아이디어가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변화시킨다는 믿음이다. 그 변화가 나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비루한 우리 인생에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는가? (p.323_ 닫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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