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좇는 삶이 라는 책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한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것이 내 비밀이다. 상처투성이인 나는 더이상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다. 남한테 주는 것도 내힘으로는 더 이상 안된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친절을 베푸는 것도 내 힘으로는 더이상 안 된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사랑하는 것도 내 힘으로는 안된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 p.329
은혜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신앙 훈련과 자기 부인에 아무리 힘써도,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로운 싸움에 아무리 발벗고 나서도 다 소용 없다. 은혜란 또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약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 p.79
얼마 전 친구한테서 엽서 한 장을 받았다. '나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 이렇게 딱 네 단어만 적혀 있었다. 발신인 주소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는 이런 경건한 문구를 잘 만드는 좀 유별난 친구였다.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웬걸, 그 문구는 저술가 겸 세미나 강사인 브레난 매닝의 것이라고 했다. 매닝이 어느 세미나에서 예수님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제자 요한을 두고 한 말로, 복음서는 그를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 밝히고 있다. 매닝은 말했다. '만일 누가 요한에게 묻는다면 그는 '나는 제자요 사도요 전도자요 복음서 자자라오'라고 하지 않고 '나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요'하고 답할 것이다.'
--- p.77
신앙의 경쟁은 처음엔 최선의 동기로 시작했더라도 결국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리 엉뚱한 데로 가게 만든다. 그 자체가 은혜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은혜의 입구는 올바른 행동이나 거룩함이 아니요 오직 회개 뿐이다.죄의 반대말은 선이 아니라 은혜다
--- p.245
신앙심 깊은 스위스 의사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는 「죄책감과 은혜」(Guilt and Grace)에서 '여러분과 함께 죄책감이라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종교가-모든 신앙인의 종교는 물론 나의 종교도-자유는커녕 오히려 파멸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매우 명백하고도 비극적 인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어서 투르니에는 자기를 찾아온 환자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랜 옛날에 지은 죄로 죄책감을 품고 사는 남자, 10년 전에 한 낙태를 마음에서 떨치지 못하는 여자. 투르니에는 환자들이 진정 구하는 것은 은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교회에서 그들이 만난 것은 수치심, 형벌에 대한 위협, 정죄 의식 등이다. 한 마디로, 은혜를 찾아 들어선 교회에서 비은혜만 받고 가는 것이다.
--- p.31
내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그는 출근길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자가 통로 맞은편의 남자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여자는 '뉴욕 타임즈'지 최장기 베스트 셀러 기록을 세운 스코드 펙(Scott Peck)의 「아직도 가야 할 길」(The Road Less Traveled, 열음사 역간)을 읽고 있었다.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남자가 물었다. '친구가 준 거예요. 이 책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나요.' '그래요? 어떤 책입니까?' '글쎄요. 무슨 인생 지침서 같기도 하고. 아직 별로 못 읽었어요.' 여자는 책장을 두르르 넘겼다. '장 제목이 이렇네요. '훈련,사랑,은혜... ' ' 남자가 말을 끊었다. '은혜가 뭡니까?' '저도 몰라요. 아직 은혜까지 못 나갔어요.'
뉴스를 듣노라면 이 여자의 마지막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전쟁, 경제 불황, 종교 갈등, 법정 싸움, 가정 파괴 등으로 얼룩진 세상은 필시 아직 은혜까지 못 나간 것이리라. '인간에게서 은혜를 빼면 얼마나 초라한 존재가 되는가.' ' 시인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의 탄식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일부 교회를 방문할 때도 이 버스에서의 대화가 떠오른다.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의 말씀이 교회라는 그릇 안에서 물 탄 술처럼 묽어지고 있다 사도 요한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고 말했다. 오랜 세월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논의하고 판정하는 일에 엄청난 힘을 쏟아 왔다. 교회마다 제각기 변호하는 진리가 있다. 은혜는 어떤가? 은혜에서 남보다 앞서려는 교회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 p. 29
'교회요! 거긴 뭐하러 가요? 그렇잖아도 비참해 죽겠는데, 가면 그 사람들 때문에 더 비참해질 거예요'
--- p.11
3절에 이르자 수천 명의 팬들이 오래 전에 들었던 거의 잊혀진 가사를 기억 속에서 더듬으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제시 노만은 후에 그 날 밤 웸블리 스타디움에 무슨 권능이 있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한 바 있다. 나는 알 것 같다. 세상은 은혜에 목말라있다. 은혜가 임할 때 세상은 그 앞에서 침묵에 잠긴다.
--- p.333
1987년 벨패스트 서부 작은 마을에서 재향 군인의 날 전몰 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개신교 신자들 위로 IRA가 던진 폭탄 하나가 떨어졌다. 11명이 죽고 63명이 다쳤다. 이 테러 행위가 다른 많은 테러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부상자 고든 윌슨의 반응 때문이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북아일랜드로 이민 와서 포목상을 하던 신앙심깊은 감리교신자였다. 폭탄이 터지자 윌슨은 스무 살난 딸 마리와 함께 콘크리트 벽돌 더미 1.5미터 아래에 갇혔다. '아빠, 정말 사랑해요.'
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정말 온 몸이 짜릿해짐을 느낀다. 죽음을 앞둔 딸아이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며 짧은 삶을 마감했다는 것이...얼마나 두려웠을까?)
척추와 뇌에 중상을 입은 마리는 몇 시간 후 병원에서 숨졌다. 후에 신문에 이런 글이 실렸다. '당시 정치가들이 한 말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든 윌슨의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도 그 고백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의 용서는 폭파범들의 파렴치한 정당화 논리를 이기고 우뚝 솟았다.'
윌슨은 병원 침대에 누워 이렇게 말했다. '딸을 잃었지만, 원한은 없다. 상대를 욕한다고 마리 윌슨이 살아나지 않는다. 오늘 밤 그리고 매일 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 pp.138-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