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1990년 1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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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6쪽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73530069 |
ISBN10 | 8973530062 |
발행일 | 1990년 1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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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6쪽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73530069 |
ISBN10 | 8973530062 |
1. 옥담 속의 눈록빛 새싹 -계수씨에게 보내는 편지- 2. 잔설은 비에 녹아 사라지고 -형수님에게 보내는 편지- 3. 바깥은 언제나 따스한 봄날 -어머님 아버님께 보내는 편지- |
감옥의 계절은 사계절이 아니라고 합니다. 겨울과 여름만 있다고 합니다. 한기를 온 몸으로 버텨야 하는 겨울, 함께 있는 동료가 증오스러운 여름. 두 계절만이 수인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1970년대의 감옥은 지금의 현대식 감옥과 시설면에서 큰 차이가 있겠죠? 무기수로 복역 중인 필자는 1년보다도 더 긴 하루를 노동과 사색으로 보낸 듯 합니다. 계수씨에게, 형수님에게, 할머니할아버지가 된 어머님과 아버님께 간간히 보낼 수 있는 서신 규정에 따라 엽서를 보냈습니다. 엽서라해봐야 면적이 얼마나 하겠습니까마는 아마 깨알같은 글씨로 마음을 전달하지 않았을까싶습니다.
제가 이번에 읽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쫌 특별합니다. '통혁당 사건 무기수 신영복 편지'라는 부제가 씌여진 필자의 초판본입니다. 1988년 9월 1일에 인쇄된 책이지요. 종이가 누렇게 빛바랜 책입니다. 30년도 지난 책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폐지 버리는 곳에서 건진 노획물품입니다. 누군가 이사가거나 집안 대청소 때 내다 버린 '폐지'였던 것을 고이 주워왔습니다. 때마침 도서관에서 최근에 나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더터라 책의 가치를 단박에 알고 얼른 주웠습니다. 마치 도둑질하는 모양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냉큼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책의 가치를 모르는 아내는 또 주워 가지고 왔냐며 또 한 소리합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다음에는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작년에 주워왔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초판본으로 읽으니 왠지 느낌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초판본이 인터넷 상에서 현재 30,000원 내외에서 거래되는 듯 싶습니다. 처음 인쇄되어 시중에 나왔을때는 3,500원인데 말입니다. 보통 다른 책 같으면 중고 책값은 없는데 보통 귀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만 책 자랑하다가 책 읽고 난 뒤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네요.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감옥 안에서 자신을 다스려갔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보내오시는 화선지에 먹을 갈아 붓글씨를 쓰면서, 때때마다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보내면 받을 수 있는 책을 읽으며 여분의 시간을 사색과 함께 보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감옥 안에서 정해진 일과 시간을 준수하면서 보내겠지요.
일단 감옥 안에 들어오면 그가 무슨 일을 했고 지위가 어땠으며 재산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나 무기수일 경우에는. 필자는 당시 보낸 엽서글에 의하면 20년 가까이 복역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돌아오는 공간인 1.86평 감옥이 세상의 전부였을테고 몸을 부대끼며 지내고 있는 동료 수인들이 가족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잊고 있는 것은 아무리 담장을 높이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함께 햇빛을 나누며,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54)
필자는 '함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돕는다'는 표현을 할 때, 비 올때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걷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감옥에 오랫동안 생활하고 있는 이들은 냉정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꾸민 표정, 걸친 의상은 물론, 지위, 재산, 학벌, 경력 등 소위 알몸이 아닌 모든 겉치레에 대하여" 외식을 구별하는 냉정한 시선을 습득하고 있다고 합니다. 긴 복역 중 엿새간의 외박을 허락받은 필자가 바깥 공기를 쇠고 들어오면서 외히려 힘에 부쳤던 느낌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으려 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으려 하는 마음의 가난에 연유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81)
필자의 가족들에게는 엿새간의 귀휴가 얼마나 소중했을까요? 하지만 필자는 감옥으로 다시 돌아온 뒤 조급했던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감옥 안에서는 노동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사회(?)에 있을 때 일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았던 필자는 노동에서 큰 삶의 공부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노동을 '소비'라고 생각하며 하챦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어르신들은 노동을 '생산'으로 생각하며 긴 호흡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세대 간 노동에 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독서에 대한 남다른 필자의 생각을 엿보게 하는 글귀가 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잔업으로 피곤도 하고 시간도 없어 볼 책이 많이 밀려 있습니만 저로서는 책 속에는 없는, 이를테면 세상의 뼈대를 접해보는 경험을 하는 느낌입니다"(102)
책 안에만 갇힌 사고가 아닌 세상과 연결된 사고를 뻗쳐 가려는 필자의 노력이 보입니다. 끝으로 '관계'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옮겨 봅니다.
"관계를 맺음이 없이 길들이는 것이나 불평등한 관계 밑에서 길들여지는 모든 것은 본질에 있어서 억압입니다" (133)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라는 기관에는 다양한 직종의 분들이 함께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갈등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하겠죠? 갈등을 풀어나가는 해법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라고 생각 듭니다. 누군가가 조금 더 희생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억압'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서로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모순된 행동입니다. 학생을 위해 존재하고, 학생의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라는 공동체가 희생과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는 형식된 관계로 맺어간다면, 추구하는 원대한 교육 방향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대학 입학하고 처음 생일에 과 선배님이 선물해준 책이었습니다. 그 세월을 다 안고 아직도 제 책장에 곱게 꽂혀 있지요. 가끔 펴 봅니다. 무엇이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게 했는가. 인간의 신념이란 무엇인가. 작은 콩 몇 알이지만, 밥에 콩이 없는 날은 기운이 많이 없더라는 얘기. 서로의 체온을,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좁은 감방에서의 여름날,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여름날이 원망스러웠다는 고백. 사람이 아름답게 사는 데는 장소가, 상황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의지와 결정의 문제죠. 내 신념을 지키고 이 좁은 곳일지언정 다른 사람을 좀더 배려하며 살겠다, 아름다운 향기를 전하며 살겠다라는 마음의 문제인 겁니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 할 텐데. 턱도 없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