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년 5월 22일 파리에서 태어난 제라르 드 네르발은 1855년 2월 26일 새벽 파리의 으슥한 골목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은 후 오래지 않아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20세기 초가 되자 그의 작품 속에서 놀라운 것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에는 18세기 유럽의 내면을 흐르던 온갖 기원의 신비주의가 있고, 괴테의 ≪파우스트≫와 실러의 ≪군도≫, 호프만의 ≪악마의 정수≫,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 하이네의 ≪아타 트롤≫과 같은 독일의 낭만주의가 배어 있으며, 보들레르와 파르나스 시파와 상징주의의 싹이 있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축소판이 있었다.
그는 평소 광증에 시달리는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문학가로서가 아니라 비극의 주인공으로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판도라>나 <오렐리아> 같은 작품은 이해할 수 없는 광증의 발로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잘못 판단되었다.
20세기에 와서 그는 새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이 무논리적으로 쓰인 바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92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네르발에 관한 연구가 있었고, 1960∼1970년대에는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프랑스 사람들은 네르발을 ‘가장 프랑스적인 서정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고 있다.
이준섭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한 후 프랑스로 건너갔다. 파리4대학에서 프랑스 낭만주의와 제라르 드 네르발 연구로 문학석사 및 박사학위(1980년)를 취득했다. 1981년부터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7년에 정년퇴임한 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2002년에는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프랑스 문학사(I)≫(세손출판사, 1993), ≪제라르 드 네르발의 삶과 죽음의 강박관념≫(고려대출판부, 1994), ≪프랑스 문학사(II)≫(세손출판사, 2002), ≪고대신화와 프랑스문학≫(고려대출판부, 2004) ≪프랑스 문학과 신비주의 세계≫(고려대출판부, 2005) 등이 있고, 역서로는 ≪불의 딸들≫(아르테, 2007), ≪실비/ 산책과 추억≫(지만지, 200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