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실 거야.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실 거야.” 그런데 하나님이 막상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내면을 들여다보아라. 정말 나를 위해 하는 일이냐? 아니면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냐?” 하나님께 헌금하고 봉사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야’라고 생각합니까? 그러나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혹시 내가 기뻐서 하는 일은 아닙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도 원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내면을 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가 좋아하는 걸 하는구나. 너는 네가 딱 원하는 만큼만 하는구나. 네 마음에 드는 만큼만 하는구나. 내가 마음이 아프다. 내가 기쁘지 않다!” 요즘 정말 많은 대형 집회들이 생기고 모임들이 생겨납니다. 과거보다 더 화려한 예배, 더 많은 사람이 모이는 예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예배는 하나님 앞에 드려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어떤 예배는 물질로 헌신한 사람을 세워 소개하기에 바쁩니다. 하나님의 자리는 보이지 않고 사람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실까요? 어떻게 하나님이 이런 교회를 쓰실 수 있겠습니까? 중학교 시절 부활절 예배를 드릴 때가 기억납니다. 당시 저는 왕십리에서 살았는데, 새벽에 버스가 없어 친구들과 여의도까지 걸어서 교회에 갔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모여서 예배드리는데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능력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예배의 화려함을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 마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삶에 누가 왕이냐?” 우리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해도 내가 왕 행세를 하는 한 하나님은 그것들을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쓰실 수 없습니다. --- p.30-31
오늘날 크리스천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적인 것을 거룩하게 만드는 크리스천이 하나이고, 믿음을 세상적으로 타락시키는 크리스천이 나머지 하나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한 당신은 세상의 것을 거룩하게 만들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것으로 믿음을 타락시켰습니까? 세상이 썩었다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 속에 들어가 썩은 것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그 속으로 들어가 부패하고 더러워진 것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용하신 물맷돌입니다. 우리는 실력을 갖춘 물맷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구별된 곳입니다. 정치와 경제와 사회를 위해 열심히 뛰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곳입니다. 선거철이 되면 특정 후보를 단상에 세워 소개하기보다 그 후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치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돈을 꾸어 주고 꾸는 경제활동을 해선 안 됩니다. 우리의 자녀 가운데서 부패한 세상을 바꿀 정치인이 나와야 하고, 바른 경제를 세우는 경제인이 나와야 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일으킬 일꾼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는 믿음을 가진 실력자들이 이 세상을 거룩하게 바꿔 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살면서 치명적인 실수도 저질렀고 돌이킬 수 없는 죄도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중에도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첫 마음을 잊고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지 못하므로 버림을 받았으나,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 p.52-53
사단장이나 연대장의 당번병들은 그들이 모시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편안할까를 항상 신경 씁니다. 그들이 모시는 상사가 편안해야 자신도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는 아내가 편안해야 가족 모두가 편안합니다. 아내의 심기가 불편하면 집안 분위기가 아주 힘들어집니다. 아내를 화나게 하지 않는 것이 제가 편안해지는 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왕이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때 우리 자신이 평안해집니다. 내 안의 불안을 제거하고 싶다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의 영광을 위해 힘쓰십시오. 그러면 평안해집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옳을 길을 걸을 때 우리를 괴롭히던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해집니다. 여로보암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이때 죄가 들어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을 통해 얼마나 기뻐하시느냐에 달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알아?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알아?”라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리의 열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