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왜 그러니?”
“나, 그 깨끼저고리보다…….”
신부인은 20세가 훨씬 넘었어도 어머니에게 응석을 버젓이 한다.
“저, 그 침모는 저를 주세요.”
“무어, 침모를 달라고? 그건 안 된다!”
“어머니도! 어머니는 또 그런 사람을 얻어 두시면 그만 아니에요!”
“네가 아직 아무 철도 없는 것이 어떻게 네 또래 되는 사람, 더구나 마음을 못 잡고 애를 쓰는 그런 사람을 거느리겠느냐? 그러니까 안 된다. 나이 지긋한 사람을 구해서 보내주마.”
“아니, 마음을 잡지 못하다니요?”
“그 침모가 원래 침모질 할 사람이 아니란다. 원래 아랫대 사람으로 역관(譯官, 통역을 맡아보는 관리)하는 사람 첩의 딸로 태어났다가 역시 역관질하는 사람의 아들에게 시집갔는데, 팔자가 기구해서 소년과부가 되었단다.”
* * *
“아씨?”
“그래.”
“그렇지만 서방님께서 쇤네를 보시고 예전 정리(情理)를 생각하시고 너무 언짢아하시며 차마 못 잊어 하시면 어떻게 해요?”
“글쎄, 그때는 어떻게 하나?”
“호호, 아씨는 자꾸 쇤네 속만 떠보려고 저러시지!”
“호호호. 아니, 내가 자네 속을 떠본단 말인가, 자네가 내 속을 떠보는 게지!”
“호호. 참 애매해요.”
“그러나저러나 간에 그런 마음은 가지는 게 아니니 만일 서방님이 자네를 보시고 못 잊어라 하시면 그때에는 또 별수 있나. 자네 처분이지.”
“호호.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왜, 네 남편이 무서워?”
“그까짓 것이야 무서울 게 없지만요!”
“그럼, 내가 무서워서?”
“호호. 아씨두 참!”
* * *
… 나라의 형편이 흔들리는 때라 이때를 이용해서 어깨가 처져 있던 남인들이 기회를 엿보아 판국을 뒤집고 자기네 세상을 만들어 놓아야 할 터인데, 임금은 어느 때 승하할지 모르게 위독한 형편이었다. 이럴수록 무슨 일이 있을까 염려해서 서인 재상들은 궁중과 조정에 철벽을 치고 그야말로 계엄령을 내린 듯이 단속이 삼엄했다.
이런 판국에 남인들은 그 틈을 헤치고 궁중이나 조정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남인들이라면 모두 그 방법을 생각하나 이렇다 할 묘책이 나서지 않았다.
이때에 조사석이 동평군과 밀책을 하나 생각해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선 궁가의 내정도 정찰할 겸 또 어느 임금이 들어서더라도 일단 총빈(寵嬪, 임금으로부터 총애를 받는 여자)이라도 될 법하여 장현의 딸 옥정을 나인(內人, 궁녀)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우선 옥정이 그만큼 똑똑하니 어느 왕자가 들어서든지 즉위해서 총빈이 될 수도 있고, 또 장현의 아들 희재가 자라면 부친의 원수도 갚아야 하므로 희재를 무예청에 들어가게 하고, 옥정은 궁중 내정을 살피고, 희재를 시켜서 내정을 알아내어 오도록 한다……. 이런 공작을 꾸며 차차 일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 * *
왕비 처소와 장씨 궁인이 있는 응향각(凝香閣)을 드나드는 한 나인은 장씨 궁인을 일컬어 ‘이 세상에 비할 바 없이 어여쁜 계집’이라고 했다. 그런데 왕비가 대왕대비 처소에 문안을 갈 때마다 그 궁인의 얼굴을 보려고 했으나, 장씨 궁인은 늘 몸을 피하고 끝내 왕비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것부터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 편 나인들의 말을 들으면 장씨 궁인은 상감을 대할 때마다 기회가 있기만 하면 왕비를 비방한다는 것이었다.
왕비는 처음에는 그 말이 모두 중간에서 말을 좋아하는 철없는 궁인들의 소리로 여겼다. 그러나 이 사람 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떠도는 말은 대개 이러한 것이었다.
‘이제 얼굴값을 하려 한다.’
‘어느새 그렇게 엉뚱한 짓을 하기 시작하니 다음날 궁중에 큰 화근이 될 것이니…….’
‘말과 행동이 너무도 엉뚱하다.’
이런 말이 너무 자주 들리니 그냥 대수롭게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말을 막아 버렸다.
“설마 그랬을 리야 있겠는가!”
* * *
“누구나 이제는 모조리 나오너라! 내 힘대로 겨뤄 보고 쓰러뜨려 보겠다, 어서들 나오너라!”
장비(張妃)가 외쳤고, 장희재가 외쳤고, 윤성녀가 외쳤다.
이제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고 꺼릴 게 없었다. 비록 상감이라 하나 그도 장비의 말이라면 모두가 엿가래 휘어지듯 녹신녹신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드디어 삼백 년 종사와 삼천리강토를 그들의 소원대로 자기네 천하로 만들어놓고야 말았다. 왕은 오직 헛이름만을 가지고 있는 데 지나지 않았다. 백관유사가 장비의 심복이 아닌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장비는 오히려 부족함이 있고, 근심이 있었다. 그것은 혹시나 이 시국에 불평을 품고 자기네를 쓰러뜨리려는 책동을 하는 반동분자가 있을까, 세상 한구석에서 어떠한 비밀결사가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과 염려가 무한히 품어지기 때문이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