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진실 속으로 거침없이”
두리반에서 철거농성을 할 때였다. 기자가 찾아왔다. 기자는 두리반을 열 때 얼마가 들었냐고 물었다. 건설사가 제시하는 배상액은 얼마였냐고 물었다. 기자의 물음은 후졌다. 그 기자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찾았다. 해고되기 전 급여가 얼마였냐고 물을까. 해고될 때 사측은 얼마를 제시했냐고 물을까. 해고는 살인이라는 그 현실 명제 앞에서 복직 외에 도대체 어떤 물음을 던질 수 있을까.
후진 물음 대신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니, 철거민을 양산하는 재개발사업 주체한테 물어야 한다. 생계터전을 강탈하는 살인 행위에 어떤 정당성이 있는가?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와 건설사는 공공성의 가면을 쓰고 정당성을 주장해 왔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수익성에 목적을 두었기에 재개발은 길을 잃었다. 용역깡패를 동원해 철거민들을 가차 없이 두들겨 팬 것도, 기존의 생명을 고려하는 개발 대신 고층 건물 위주의 개발을 지향한 것도, 소형 평수나 임대아파트 대신 대형 평수만을 고집한 것도 오로지 수익성에 명을 걸었기 때문이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공공성을 앞세운 가면의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와 건설사의 수익성 놀음을 철거민의 시선으로 기막히게 파헤치고 있다. 생계터전의 강탈이야말로 살인임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유채림 (두리반 철거민, 소설가)
“사람들은 망각하기 바쁘다”
영화사 소개가 끝나면 시작하고, 제작진 이름이 올라가면 끝나는 영화와 달리, 우리가 사는 현실은 늘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그전부터 쌓여 온 무언가 위에 서 있고, 극적인 일을 겪었다고 해서 갑자기 끝나지 않고 그저 다른 국면으로 변할 따름이다. 계속 관심 기울이기에는 다른 이슈가 늘 오는 세상 속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싶으면 망각하기 바쁘다.
언론과 여러 논의에 오르는 철거민의 비극이 특히 그렇다. 큰 사고와 함께 주목을 받고, 한동안 시끄럽다가, 그럭저럭 다시 묻힌다. 하지만 현실의 그 자리에는 여지없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함께 사람들이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관심 한 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전부가 걸려 있기에, 그들은 떠날 수 없다. 이 책은 2009년 용산참사를 다룬 [내가 살던 용산]의 후속권이지만, 단순한 속편이 아니다. 앞서 늘 존재했던 땅 소유와 개발논리의 근본적 모순, 개발 과정의 절차와 문제, 관심에서 가려진 철거 항의자 인권 유린, 다른 철거민 동네의 싸우는 사연 취재기, 그들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 등이 있다. 물론 용산 그 사람들의 법정 싸움으로 다시 상처받는 그 후 이야기도 있다. 땅따먹기 놀이의 절묘한 비유로, 철거민들을 취재하며 둘러보는 동네 곳곳의 풍경으로, 비극적 사건 속에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연달아 엮이는 연출로 보여 준다.
이 책은 쉽게 답을 던져 주지 않는다. 다만 철거 문제가 찰나의 비극적 구경거리가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나 생겨날 수 있는 사회적 모순의 단면임을 직면시켜 주고, 함께 느끼며 고민하자는 강력한 제안이다.
김낙호 (만화연구가)
기억한다는 일은 힘이 세다고 믿는다”
도시는, 특히 서울은 거대한 무덤이다. 그저 추억만 묻었다면 애잔하겠건만 거기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던 우리 이웃들에게 순식간에 투사라는 낯선 꼬리표를, 그리고 열사라는 묘비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선사해 버린 이토록 거대한 무덤. 무조건 이마에 구호를 질끈 동여맨 ‘시위꾼’을 떠올리지 말기를. 우리 옆집 식당 이모이고 호프집 마음 좋은 아저씨였으며 성실한 고깃집 청년이었던 지극히 보통의 이웃이었으나, 도시가 등을 돌리자 순식간에 이웃들은 폭도가 되었고 남일당은 무덤이 되었다. 서울은 그런 무덤이 너무 많은 도시다. 무덤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그런 것을 순식간에 잊고서 오래된 것은 무조건 나쁘고 새것은 모두 옳다고 여기는 도시, 나쁜 기억은 무조건 없었던 체 하는 데 능란한 도시. 그러므로 이 무덤들은 흔적도 남지 않고 곧 사라질 것이다. 그저 기억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에 묘비를 짓는 일. 여기 사람이 있었노라고, 여기 사람이 살았노라고. 이런 뜻 가진 작가들의 마음을 한 장씩 넘기며 당신도 마음에 묘비 하나 세워 주기를. 우리가 잃은 이웃들을, 살아남아 여전히 싸우는 이웃들을. 기억한다는 일은 언뜻 초라해 보이지만 사실은 힘이 세다고 믿는다. 그린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김현진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