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배리 너 맞니?”
“예…… 누구시죠?”
“그래, 배리 너구나…… 난 고모다. 나이로비에 있는 제인 고모. 내 말 듣고 있니?”
“죄송합니다만, 누구시라고요?”
“제인 고모. 내 말 잘 들어라, 배리.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자동차 사고를 당하셨어. 여보세요?
내 말 듣고 있니?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배리, 보스턴에 있는 삼촌에게는 네가 소식을 전해주면 좋겠다. 더 말을 못 하겠구나. 그래, 배리, 또 전화할게.”
그게 다였다. 전화는 끊어졌고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엌에서는 달걀이 타고 있었다. 그 냄새를 맡으며, 그리고 벽에 나 있는 균열이 몇 개나 되는지 세면서, 나는 내가 막 경험한 상실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보려고 애를 썼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즈음에 그는 나에게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신화적인 존재였다. 아버지는 1963년에 하와이를 떠났다. 당시 나는 겨우 두 살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와 외조부모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만 아버지를 알 수 있었다.(33쪽)
■아버지는 아프리카 사람이었다. 케냐의 루오족 출신으로 알레고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빅토리아 호 주변이었다. 마을은 가난했지만 아버지의 아버지는 뛰어난 농부였고 마을의 원로이자 의사였다. 나에게는 또 한 명의 할아버지이고, 함자는 후세인 온양고 오바마이다. 아버지는 염소를 치며 영국 식민지 정부가 세운 학교에 다녔다. 아버지는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장래성을 보였고, 마침내 장학금을 받으며 나이로비에서 유학했다. (중략) 아버지는 스물세 살에 하와이 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와이 대학교 역사상 첫 아프리카 학생이었다. 아버지는 경제학과 작시법을 전공했고, 3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아버지는 친구들이 많았고 국제학생연합회를 조직해서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러시아어 강좌를 들으면서, 어눌하고 수줍음 많던 열여덟 살의 미국인 소녀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 소녀의 아버지는 처음에 펄쩍 뛰면서 반대했지만, 아버지의 매력과지성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어린 연인은 결혼을 했고, 두 사람 사이에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 이름을 물려주었다. 아버지는 또 다른 장학금을 받았다. 이번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밟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장학금에 가족을 데리고 가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돈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가족과 헤어졌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뒤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어머니와 아들은 미국에 남았다. 하지만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사랑의 끈은 이어져 있었다.(39~40쪽)
■“어제 어떤 남자가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하잖아. 버스를 기다리고 섰는데 말이야.”
“그게 다예요?”
그녀는 노여움으로 입술을 잠시 오므렸다.
“얼마나 험상궂었는지 모른다. 너무너무 무서운 인상이었단 말이야. 1달러를 줬는데 계속 더 달라고 하잖아. 그때 마침 버스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이 내 머리를 후려쳤을지도 몰라.”
나는 다시 부엌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컵을 씻고 있다가 돌아섰다.
“제가 모셔드리고 올 테니 가만 계세요.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시나 봐요.”
“겨우 거지가 돈을 구걸했다는 일로?”
“저도 압니다. 하지만 많이 무서울 수 있죠. 덩치 큰 남자가 앞을 가로막고 있으면요. 별일 아닌 게 아닐 수도 있다니까요.”
할아버지가 돌아섰다. 난 그제야 할아버지가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말 별일 아니야. 나도 네 할머니를 은행까지 태워다주는 거 별일 아니야. 네 할머니는 예전에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남자에게 협박을 받은 적도 있어. 그런데 그까짓 한 명이 그런다고 뭐가 별일이겠니? 내가 진짜 이유를 말해줄까? 네가 처음 이 부엌에 들어오기 전에 네 할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그 남자 흑인이었단 말예요.’ 이랬어.”
‘흑인’이라는 단어에서 할아버지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 네 할머니가 무섭다는 진짜 이유가 바로 그거야. 나는 그게 마음에 안 들어.”
할아버지의 말은 무거운 주먹처럼 내 가슴을 강타했다. 가슴이 떨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중략) 두 분이 집에서 나간 뒤에 나는 내 침대에 걸터앉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두 분은 나를 위해서 온갖 것들을 희생하고 또 희생했다. 당신들이 가진 모든 희망을 나의 성공에다 쏟아부었다. 나를 향한 두 분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는 구석은 여태까지 단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았다. 그런데 피부색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두 분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166~168쪽)
■나는 오랫동안 무덤 앞에 앉아서 울었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그제야 정적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가족을 구분하는 동그라미가 완전히 닫히는 걸 느꼈다. 내가 누구이고, 또 내가 누구를 돌보고 보살피는 것은 지성이나 의무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말로 규정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보낸 삶을 돌아보았다. 흑인으로서의 삶, 백인으로서의 삶, 소년 시절의 자포자기적인 절망, 시카고에서 목격했던 분노와 희망……. 이 모든 것들은 대서양 건너 멀리 떨어진 이 작은 곳과 이어져 있었고, 내 이름이나 피부색을 훌쩍 뛰어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687~688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