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출생. 1985년 제15회 삼성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 중편소설 《등대의 불 붉히기》로 KBS문학상, 2003년 《「사자의 서」를 쓴 티베트의 영혼 파드마삼바바》로 민음사 올해의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십우도》《탄트라》《법정》《샤라쿠 김홍도의 비밀》《소설 탄허》《소설 신윤복》《관상》 등이 있다.
작가가 수년간의 자료조사와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완성한 《퇴계》는 인간 퇴계의 삶과 사상을 입체적으로 담아낸 역작이다. 임금의 명을 받은 율곡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퇴계를 추적해가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통해, 여러 시공간을 옮겨 다니며 퇴계의 치열한 정신세계와 은밀한 사랑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학문의 전성기를 연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율곡 이이의 사상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서른네 살의 패기만만한 율곡과 예순아홉 살의 퇴계, 그리고 이미 팔십여 년 전에 죽은 조광조의 사상이 한 공간에서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것이 이 책의 백미이다.
단양은 참으로 어렵고 피폐한 곳이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기민(飢民) 구제에 나섰다. 한 달이 지날 무렵 퇴계의 차남 채가 죽었다. 채는 그때 경남 의령에 있는 외할아버지 댁에서 농사를 돕고 있었다. 혼사를 눈앞에 두고 죽은 것이다. 태어나 한 달이 안 되어 어미를 잃은 자식이었다. 거기에다 아비로서의 정마저 주지 못한 자식이었다. 나이 겨우 스물한 살. 퇴계에게는 몸이 찢어질 듯 아픈 세월이었다. 죽음만을 기다리던 세월이었다. 그 처절한 와중에 마음 줄 곳 하나 없던 퇴계를 어린 두향이 안았다. 그의 몸은 이미 노쇠해지고 있었지만 두향은 그의 맑디맑고 슬픈 영혼을 사랑했다. 처절한 상황에 굴하지 않는 정신을 사랑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진리를 찾아가는 선비를 사랑했다. 그 사랑에 감동한 퇴계는 그녀에게 문향(聞香)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너를 보면 매화 향이 들리는 듯하니 문향이라 하여라. 향기는 맡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이다. 너는 이제 두향이가 아니라 문향이다.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이라, 매화는 춥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 법이다.” 그날부터 두향은 기적에 오른 두향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문향으로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