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열린 제1회 예루살렘공의회는, 할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며,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것은 복음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제1회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현장의 증인들이 공허한 이론가들을 제압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는 공허한 이론의 종교가 아니라, 현장의 종교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 대사건이었습니다. --- p.22 ‘어떤 사람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 시대를 위한 사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다운 사도,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코 오해하지 마십시다. 그리스도인의 권위는 돈이나 권력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목회자의 권위는 직책이나 호칭, 교황청이나 교단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교회의 권위는 예배당의 웅장함이나 화려함, 교인의 숫자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권위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 권위의 원천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 p.76 ‘사도와’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우리의 믿음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입으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믿고 있음을 우리 자신의 삶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 전이될 수도 없고, 그런 믿음으로야 이 세상을 이길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 p.149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울이 우리가 아는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부르심에 순종했던 바나바가 모든 사람이 경원하던 바울을 계속 섬겨 주고, 기회를 주고, 이끌어 준 결과였습니다. 본문 이후에 사도행전이 바울의 독무대로 펼쳐지게 된 것 역시, 본문에 이르기까지 바울 곁에 바나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