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발터 하젠클레버 Walter Georg Alfred Hasenclever
1890년 독일 중서부 도시 아헨(Aachen)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큰 기업의 딸이었고 아버지는 의사였다. 그런 부르주아 집안의 분위기는 그의 성장 과정에서부터 후에 갖게 되는 정치적 성향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임신중독증으로 인한 정신병력으로 아들을 기피했던 어머니와 엄하기만 한 아버지 사이에서 하젠클레버는 불안한 유년기를 보냈다.
1908년 김나지움을 간신히 졸업한 하젠클레버는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옥스퍼드로에서 법학을 전공한다. 그러나 공부에 전념하지 않고 아버지로부터 해방된 기쁨과 자유를 만끽하며 첫 번째 드라마 <열반(Nirwana)>을 써 자비로 출판한다. 이를 못 마땅히 여긴 아버지는 아들을 스위스 로잔의 친구 집에 머물게 한다. 이 시기에 그는 공부는 제쳐 놓고 집필에 몰두해, <제국(Das Reich)>이라는 비극을 썼다.
1909년 한밤중에 그는 라이프치히로 도주하지만 이곳에서도 아버지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기 위해 법학을 전공한다. 하지만 독문학, 철학, 예술사에 관심을 두었다. 그나마도 공부에 열심히 덤벼들지는 않았다. 이를 눈치챈 아버지는 학비 원조를 일절 끊어 버렸고 부모와의 인연은 완전히 끝나고 만다. 하젠클레버는 그 후 할머니의 도움을 받게 된다.
라이프치히에서 시인이며 비평가인 핀투스, 출판인 로볼트(Rowohlt) 주위에 몰려든 여러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 모임은 표현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예술가 단체였다. 1913년 시집 ≪젊은이(Der J?ngling)≫가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는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한 젊은이의 체험담을 담고 있다. <끝없는 대화(Das unendliche Gespr?ch)>, <첫날 밤(Die Hochzeitsnacht)> 등 단막극 몇 개가 이 시기에 발표된다. 이후로 성공작 <아들(Der Sohn)>, 반전 드라마 <구원자(Der Retter)>를 완성했으며 1917년 소포클레스의 주제를 재해석한 <안티고네(Antigone)>로 젊은 극작가에게는 최고의 영예인 ‘클라이스트 상(Kleist-Preis)’을 받는다.
핀투스의 주선으로 1924년 베를린 ≪8시 석간신문(8-Uhr-Abendblatt)≫의 특파원이 되어 파리로 간다. 1925년 <살인(Mord)>이라는 비극을 끝으로 표현주의와 결별하고 수필, 문예평론 등을 쓰는 한편 투홀스키(Kurt Tucholsky)와 같은 작가 겸 언론인과의 친분을 쌓는다. 파리에 머물며 프랑스 연극에 자극받아 희극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전환기에 쓰인 <멋쟁이 신사>(1926)는 베를린에서의 초연 이후 1년에 100여 곳 이상의 무대에서 막이 오른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다. 이어서 희극 작품 <사랑은 천국에서 맺어지리라>(1928), <나폴레옹 끼어들다(Napoleon greift ein)>(1929)이 발표된다. 하젠클레버의 희극은 이야기의 전개보다는 인물들의 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로써 예술성이 살아난다.
나치가 집권하면서 하젠클레버의 책은 모두 불태워졌고 그의 시민권도 박탈된다. 1934년 프랑스 니스에서 에디트 셰퍼(Edith Sch?fer)를 만나 결혼하고 1937년부터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에 정착한다. 1938년 히틀러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하젠클레버는 히틀러를 반대하는 요주의 인물로 간주되어 열흘간 감금된다. 하젠클레버는 게슈타포에 연행될까 두려웠던 나머지 가짜 여권을 만들어 이탈리아를 탈출해 프랑스 칸에 잠입한다. 1939년 두 번이나 체포되지만 친구인 장 지로두(Jean Giraudoux)의 도움으로 석방된다. 1939년 자서전적 소설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 (Die Rechtlosen)≫은 하젠클레버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 폭력으로 삶의 공간이 사라짐을 폭로하고 수용소 생활도 밝히고 있다. 1940년 독일 군대가 밀어닥치자 준비해 두었던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다. 향년 50세였다. 하젠클레버는 엑상프로방스의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한국외국어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쾰른(K?ln)대학에서 연극학을 전공했다. 극작가들 중 레싱, 실러, 클라이스트, 뷔히너, 헤벨, 베데킨트를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특히 브레히트와 뒤렌마트에 전념했다. 뒤렌마트의 <로물루스 대제> 등 많은 작품을 연출했고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 등 여러 희곡을 번역했다. 방송과 공연을 통해 어린이·청소년극과 라디오 드라마 활성에도 노력했다. <브레히트 후기 희곡 작품의 3차원적 구조에 관하여>, <베데킨트 드라마에 나타나는 여성상과 신화적 특성> 등의 논문이 있다. 단국대학교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