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경남 합천 출생. 200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타」가 당선됐고 같은 해 전태일문학상에 소설 「너의 이름은 희망이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희망라면 세 봉지』가 있다. 첫 장편소설 『식당사장 장만호』는 남편과 식당을 운영했던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식당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을 유쾌하고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P.11-12 : “점심 드셨습니까?” “…….” 자살할 인간이 무슨 점심이냐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주려다 입을 다물었다. “요 앞에 식당 가서 점심 한 그릇 합시다.” 나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경찰관 중에서 제일로 오지랖이 넓은 경찰관이 아닌가 싶었다. 죽을 자신도 없어 곧바로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광안대교에서 서성이는 정신 나간 인간에게 밥을 먹었냐니? 아닌 게 아니라 점심을 먹었냐는 소리를 들은 내 위는 격렬하게 반응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넣지 못한 뱃속은 염치도 없이 꼬르륵대기까지 했다.
P.12-13 : 갓 지은 밥 냄새, 그 향기롭고 고소한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어 혈관과 세포에 고요한 물결처럼 번져나갔다. 고깃결대로 잘게 찢어서 넣은 양지머리, 큼직하게 잘라 넣은 대파, 토란대, 숙주나물, 고사리가 들어간 육개장 한 그릇. 나는 저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그릇에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맞 은편에 앉아 있는 경찰관이 나를 쳐다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랐다. 나는 김이 오르는 따스한 밥 한 숟가락을 입안으로 퍼넣고 육개장을 떠먹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맛이었다. 말라붙은 고목 같았던 내 몸속으로 수액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았다. 생의 맛이었다. 문득 살고 싶었다.
P.58 : 약육강식의 냉혹한 논리를 벗어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장이건 식당이건 공사장이건 병원 안에서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정글의 법칙이 손바닥만 한 식당을 운영하는 데도 작용하는 논리라니, 내가 식당일을 너무 만만하게 본 건가 싶었다.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손님에게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만이 식당일이 아니었다. 식당에 나온 지 닷새 만에 목격한 것은 대화와 타협의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생의 얼굴이었다. 나는 바야흐로 이 식당 바닥, 피 튀기는 생존 싸움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