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 바닷가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때 외교관의 꿈을 꾸었지만, 고시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포기했다. 1991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기자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스포츠를 좋아해 근무 기간의 절반 이상을 스포츠부에서 보냈으며 2000 시드니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특히 육상에 애착이 많아 마라톤 풀코스를 두 차례 완주하기도 했다.술과 담배를 멀리하면서 비교적 건강하다고 자부했지만 2008년 마흔넷의 나이에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병원에서 권유하던 12회의 항암 치료를 4회만 받고 이후에는 면역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2년 6개월간 휴직하면서 식이요법과 운동, 명상, 웃음 등으로 암을 극복하고 2011년에 복직했다. 그해 조선일보에 ‘암 환자로 행복하게 살기’라는 투병 체험기를 연재해 암 환자와 가족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2011년부터는 ‘웃음보따里’ 동호회를 만들어 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웃으며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일을 하면서 웃음보따里가 그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될 날을 꿈꾸며 살고 있다. 2012년 6월 조선일보를 퇴사해 현재는 헬스조선 편집장을 맡고 있다.
올림픽 때 그렇게 고생했기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한 과로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베이징 올림픽에서 고생한 게 내 생명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 그토록 힘들게 취재를 하지 않았더라면,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더라면 혈변을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전까지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던 나는 암에 걸린 사실도 모르고 계속 지냈을 것이다. 올림픽 취재를 열심히 한 덕분에 암을 발견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다. ---「내 생명을 살린 베이징 올림픽」중에서
암 통보를 받은 후 며칠 동안 나는 틈만 나면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고 하느님께 외쳤다.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마다 원망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얼마 안 가 원망이 매달림으로 바뀌었다. 무조건 “살려달라”고 했다. 당장 죽는다는 말을 들은 것이 아닌데도 죽음이란 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죽음이란 단어」중에서
막상 휴직을 결정했을 때는 내 인생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휴직은 잘한 선택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자신을 추스르고 쉴 시간을 갖게 됐다. 암은 내 교만함에 대해 반성할 시간을 줬고, 인생 후반전을 앞둔 내게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그래서 암이 고맙다. ---「살아서 다시 회사로 돌아올 수 있을까」중에서
항암 치료 중단이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적극적인 치유 방법을 찾아 실천하겠다는 의지였다. 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 몸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로, 스트레스, 병을 부르는 잘못된 식생활 등 암을 불러온 생활 습관을 다 뜯어고쳐야 최종적으로 이긴다고 생각했다. 항암 치료를 끝내더라도 생활 습관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언제든 암은 재발할 것 같았다. ---「병원 치료만큼 중요한 것」중에서
암이 내게 준 선물 중 하나가 ‘아빠 가정주부’체험이다.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아내와 두 딸에게 “이제부터 내가 가정주부다. 식사도 직접 챙기고 청소 같은 집안일도 내가 다 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족이 함께 살라고 내게 암이라는 십자가를 지게 하셨나 보다. 떨어져 사는 고통을 없애주시려고, 그동안 두 딸에게 소홀했던 걸 이참에 다 보상해주라고 내게 기회를 주셨나 보다’라고. ---「암이 내게 준 선물 하나」중에서
나도 수녀님을 따라 감탄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다며 짜증 내던 둘째 딸이 5분이라도 일찍 일어나면 고맙다고 탄성을 질렀고, 멋진 음악을 들으면 “야~ 정말 좋다” 하고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수녀님 말씀대로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점을 먼저 떠올렸더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덩달아 생활이 즐거워졌다. ---「고 장영희 교수와 이해인 수녀님」중에서
암과 싸워 이긴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암 수술 전후의 생활 습관이 완전히 다르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음식을 먹는 태도 역시 다르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게 해롭다는 의견도 있지만 건강에 유익한 것이냐 아닌 것이냐를 기준으로 음식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인터넷 카페와 동호회에서 만난 많은 환자들이 내겐 스승이었고 삶의 동반자였다. ---「병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투병의 지혜」중에서
내가 채식을 선호하게 된 것은 순전히 건강상의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은 내 몸 상태가 보여준다. 물론 고기를 좀 먹는다고, 동물성 단백질을 좀 먹는다고 모든 사람이 당장 탈이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각종 질병이나 노화로 소화 기능이 떨어진 사람이라면 굳이 몸에 부담을 많이 주는 고기를 먹지 않아도 건강을 지킬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풀만 먹는 채식이 별로라고요?」중에서
“암에 걸리는 것은 뭔가 시련을 줌으로써 나를 단련하고자 함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어느 순간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암에 걸린 덕분에 내가 소중한 뭔가를 새롭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치유의 에너지가 작동한다.” 여기서 말하는 치유의 에너지를 바꿔 말하면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몸의 자연치유력을 믿자」중에서
스스로 암이 생긴 생활을 하나도 바꾸지 않으면서 병원 검사만 받는다면 재발의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병원 검사는 몸 상태를 알아보는 수단일 뿐, 몸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것은 아니다. 검사는 필요한 것이지만 그 자체가 치료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재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자」중에서
면역력을 높이는 생활을 시도하는 것, 그게 바로 기적의 첫걸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면역력을 높이는 생활을 엄격히 하려면 환자와 가족의 의지가 병원 치료를 받을 때보다 훨씬 강해져야 한다. 그동안 병원이나 의사에게 의지하던 자세를 버리고 스스로 치유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생존율 10%를 100%로 만들기」중에서
그동안 암을 이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모두들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암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에 이끌리기보다는 스스로 암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좋은 음식 골라 먹기, 명상, 운동처럼 몸에 도움이 되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과거의 자신과 타협해선 안 된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암을 통하여 삶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된 이 고백록을 끝까지 읽고 나니 제 마음에도 얼굴에도 슬며시 웃음꽃이 피어오르네요. 아직 이렇게 살아 있음을 고마워하며 ‘웃음보따里 이장님’을 자처하는 저자와 이 모임에 함께하는 이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암 환우들과 더불어 저도 다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 이해인(수녀,시인)
‘암 때문에’ 고통스럽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 ‘암 덕분에’ 오히려 자신과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얻게 되었다는 고백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암 환자와 그 가족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다시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 구자홍(LS 미래원 회장)
이 책은 대장암 3기 암 환자의 단순한 투병기가 아니라, 어둡고 무거운 편견의 암이란 질병을 받아들이고 성찰함으로써 무엇이 진정한 치유이고 행복인지를 일깨워주기에 나를 더 뭉클하게 한다. 암 환자와 가족에게는 용기와 희망의 씨앗을, 나와 같은 예비 암 환자에게는 반성과 감사의 씨앗을 던지기에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하게 된다. - 이홍식(연세대학교 의대 정신과 명예교수)
행복을 연구하는 저에게 이 책은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고 싶은 책입니다. ‘암과 행복’,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두 단어의 조합을 멋지게 이루어낸 이 책을 암 투병 중이신 제 어머니께 꼭 선물하려고 합니다.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