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그래 미즈 그레이시? 얼굴이 조금 벌개진 것 같은데, 방금 전에 누가 야한 농담이라도 한것처럼.'
'그쪽은 섹스밖에 생각할 게 없어요!'
그레이시가 소리를 질렀다.
'잠자리를 같이 하는 조건으로 그쪽을 따라가야 한다면, 이쪽에서 거절하겠어요!'
하얗게 질려서, 그레이시는 입을 딱 다물었다. 내가 방금 무슨짓을 한거야?바비탐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이런, 안타가운 일이.'
그레이시는 죽고싶었다. 어떻게 이런식으로 망신을 자초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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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오만한 눈빛은 자신의 승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레이시는 그를 너무 아끼고 있었기 때문에, 독재자처럼 모든 조건을 지시하는 모습을 간과해서 그의 성경적인 결함을 장려하는 것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바비 탐에게 다가가서 팔짱을 끼었다.
"좋아요."
그레이시는 나지막하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하겠어요. 하지만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언급할 때 '미래의 미시즈 바비 탐'이라고 하면 안 돼요. 알아듣겠어요? 그 말을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하면, 내가 직접 약혼이 가짜라는 걸 온 세상에 퍼트릴 거예요. 그뿐 아니라, 당신이... 당신이..."
그레이시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 비록 처음엔 강하게 나갔다지만, 지금 당장 바비 탐에게 해줄 만한 호된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도끼 살인마라고 떠들어댈 건가?"
바비 탐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레이시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다시 시도를 했다.
"채식주의자?"
순간적으로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다.
"성불구자!"
바비 탐은 정신 나간 여자를 보듯, 그레이시를 바라보았다.
"사람들한테 내가 성불구자라는 얘기를 하겠단 말이야?"
"그 듣기 싫은 호칭으로 날 부르면요."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도끼 살인마'를 고집하는 게 나을 거야. 그쪽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일 테니까."
"말을 참 자신만만하게 하네요, 바비 탐. 하지만 개인적으로 관찰해본 결과, 당신은 입만 살아 있지, 정작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흘러나온 말이었다지만, 그레이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남자와 시시덕거린 경험도 한번 없는 서른 살짜리 노처녀가, 프로 난봉꾼에게 성적으로 도전을 하다니. 그는 입을 벌리고 그레이시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결국 바비 탐의 말문을 막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험을 경고하려는 듯 무릎이 떨리는 기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시는 턱을 치켜 올리고 침대에서 씩씩하게 걸어나왔다.
정면의 통로까지 걸어왔을 무렵, 그레이시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분명히 바비 탐처럼 경쟁심이 강한 사람은 절대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히, 바로 지금, 적절하게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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