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노미야는 유키가 내온 보리차를 단숨에 비운 다음 니초카이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는 소리와 동시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 예, 니초흥업입니다.
- 니노미야 기획입니다. 구와바라 씨, 계십니까?
-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잠시 후 구와바라가 전화를 받았다.
- 니노미야입니다. 가도마까지 함께 가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후나코시건설의 후루카와바시 현장입니다.
- 워쩐 일이래? 문제라도 생겼단감?
- 벤츠가 현장 입구를 막고 있답니다. 도리카이의 오사와토목이랍니다.
- 오사와토목? 들어본 적 없는디.
- 일을 달라고 떼를 쓰는 모양입니다. 하라다라는 영업부장이 현장에 얼굴을 내밀었고요.
- 오사와토목의 하라다라고잉…….
-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 그려잉. 기다릴 텐게.
수화기를 내려놓자, 맞은편에서 빈 유리컵을 손에 든 유키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쭈뼛거렸다.
“나가?”
“오늘은 늦을지도 몰라.”
니노미야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나도 오늘은 늦어.”
“데이트?”
“질투해?”
“바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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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타케 씨는 이 돈을 하시모토에게 건네려 했습니다. 이미 하시모토에게 200만 엔을 제시한 상태인데, 제가 맨손으로 인감을 받아올 순 없죠. 이 돈은 하시모토에게 건넬 최소한의 금액입니다. 그러면 제 보수는 제로가 되는데요.”
“아하하, 그럴 수도 있구먼.”
고바타케는 손을 턱에 괸 채, 다시 흥정을 시작했다.
“그럼 300만 엔으로 할까?”
“안 됩니다.”
니노미야는 분명하게 고개를 저어 의사를 표시했다.
“달랑 100만 엔 올린다고 하시모토가 덥석 물 것 같진 않습니다.”
“당신, 너무하네.”
“성공 보수는 500만 엔. 그게 제 조건입니다.”
니노미야는 고바타케의 눈을 노려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닙니다. 가령 하시모토에게 400만 엔을 건네면 제게 남는 건 고작 100만 엔……. 사실 500만 엔이라도 무리일지 모릅니다.”
“고집이 세네.”
“상대는 2,000만 엔을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알겠네. 500만 엔으로 하지.”
고바타케가 체념한 듯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보상금 지불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돈을 건네지 않으면 인감은 안 찍을 텐데요.”
니노미야는 3,000만 엔을 직접 가지고 가라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거절할 생각으로 분명히 물었다.
“자세한 내용은 동의서를 읽어보면 알거요. 본 계약을 체결한 후에 1,000만 엔, 수로 개수공사에 들어갈 때 1,000만 엔, 공사 완료 때에 1,000만 엔으로 세 번에 나눠 조합에 이체하도록 명기되어 있소.”
“알겠습니다.”
니노미야는 의뢰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경비는 하루 3만 엔입니다. 일단 일주일 치를 주시죠.”
“흠…….”
고바타케는 조금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봉투를 집어넣고 안 주머니에서 지갑과 수리조합 동의서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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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서 몸을 던져 바다를 향해 뛰면 제방을 건너뛸 수 있을까.’
높이는 10미터였고 도움닫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니노미야는 제방에 부딪혀 주변에 골수가 흩어져 있는 자신의 사체를 상상했다. 장난이 아니었다. 발목에 고무 튜브를 두르고 뛰어내리는 번지
점프와는 차원이 달랐다. 수영은 자신 있지만 넓이뛰기에는 자신이 없다. 구두도 없이 맨발이었다. 무엇보다 니노미야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대체 무슨 나쁜 짓을 했다고.’
‘너는 기분 좋게 얻어맞은 게 다잖여’하는 구와바라의 비웃던 말소리가 떠올랐다.
‘제기랄! 전부 다 구와바라 자식 탓이야!’
불운을 저주했다. 여기서 고민하고 있다고 해서 변할 건 하나도 없었다.
미닫이틀에 손을 대고 무릎을 밖으로 내밀었다. 소금기가 있는 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팔이 떨리고 무릎이 굳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10, 9, 8…….’
니노미야는 눈을 감고 수를 셌다.
‘3, 2, 1.’
눈을 떴다. 공포가 등을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니노미야는 공중을 향해 발을 차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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