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 대한 수많은 불만 중에서 제일 큰 것은 ‘어째서 일본인은 이토록 영어를 못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들이 또 일본인의 영어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내용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지만, 이해한 척하며 “응, 응” 하고 끄덕였다. 그랬더니 리즈가 나를 향해서 말한다.
“무엇보다 그 사람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예스, 예스’ 하고 대답하는 게 제일 열 받아!”
도대체 누구의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지만, 어쨌든 나는 “예스”라고 대답했다.
“어제도……그러는 거야. 나를 무시한 거지?”
“예스.”
“그래서……했던 거야. 그러고는 바로 아는 척을 하는 거야.”
“예스.”
일본인은 알지도 못하면서 ‘예스’라고 말하는데, 그게 제일 화가 난단다. 그런데 나는 그런 화제를 따라가지 못하고 예스를 연발했다. 정말 그때처럼 한심한 적이 없었다.
- <하나, 일본에서 인도인처럼 사는 프랑스인> 중에서
우쭐해진 윌리는 어느 날 “나, 가수로 데뷔하기로 했어” 하고 선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마이클 잭슨이 될 거야” 하고 의기양양했다. ‘일본의 마이클 잭슨’이 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존재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하면 일본에서는 별로야. 그러니까 블랙 아메리칸이라고 할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힘들지 않겠어?”
“그렇지 않아. 그래서 영어회화를 배우는 거니까.”
대단한 발상이다. 흑인 미국인을 연출하기 위해서 영어 공부를 하리라고는……. 우리가 경악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윌리는 와세다 거리의 인도에서 ‘문워크’를 보여줬다. 뒤를 향해 걷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 <둘, 콩고에서 사랑을 담아> 중에서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먹기도 하고, 맥주도 마시며 하라주쿠까지 걸었다. 우에키는 점점 호기심이 발동한 듯 “저건 뭐야?” “저 사람은 뭘 하는 거지?” 하고 나에게 질문 공세를 펼쳤다. 언제나 그렇지만, 왠지 외국인과 함께 있으면 눈에 비치는 풍경도 외국인의 것이 된다. 東京이 Tokyo가 된다. 휴지를 나눠주는 젊은이나, 이동통신사의 대리점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캠페인을 펼치는 여자를 가리키며 우에키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면 설명하는 나도 ‘묘한 짓을 하고 있네!’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 것이다.
--- <다섯, 101번째 우에키 가문 페루인> 중에서
전철역 앞에는 막 입학한 젊은 학생들로 복잡했지만 다후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주위에 어울리지 않는 얼뜨기 스타일의 남자가 수상한 거동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다후였다. 아래는 반바지인데, 위에는 뮤지션마냥 새빨간 티셔츠에 청재킷을 입었다. 게다가 양쪽 끝이 치켜 올라간 선글라스에 처렁처렁한 금속 목걸이까지 걸쳤다. 그는 예전과 변함없이 통통했기 때문에 마치 도라에몽이 헤비메탈 스타일로 차려입은 듯했다.
“언제 일본에 왔어?”
“어제요.”
“어제? 용케도 여기까지 왔네!”
“이게 있으니까요.”
다후는 도쿄의 지도와 나침반을 내밀었다.
대단한 녀석이다. 첫 해외여행인데 전혀 위축된 기색이 없다. 이 행동력, 이 영민함, 그리고 도라에몽과 같은 이 체형. 아버지 루 선생님을 빼닮았다.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싶은 충동과 그리움을 억누르고, 그를 내 방으로 안내했다.
“얼굴이나 복장이 조금 멀쩡해지셨네요.”
헤비메탈 도라에몽은 자기 꼬락서니는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
“옛날에는 머리도 수염도 부스스해서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잖아요.”
“그랬었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5년 전 중국 다롄에 있을 때를 생각했다.
--- <여섯, 다롄에서 온 도라에몽> 중에서
레바논 요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알리의 말을 듣고 안도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또 알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르바이트 안 됐어.”
‘어째서 안 됐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나타난 알리의 모습을 보고 한순간에 납득했다.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고급스러운 쓰리피스 정장을 입었다. 가만히 있어도 풍채가 좋은데 품격이 더해지니 잘 어울린다. 나는 압도됐다. 이건 완전히 ‘아랍의 대부호’다. 레스토랑 주인과 알리가 나란히 섰을 때 손님은 반드시 알리를 주인으로 생각할 게 틀림없다.
“매니저로는 채용하고 싶다고 했는데……왜 웨이터는 안 되고 매니저라면 괜찮다는 거지?”
덜렁이 알리에게는 비아냥이 통하지 않았다.
--- <일곱, 대부호 알리> 중에서
“어? 정말이야?”
어이가 없었다. 맹인인 마후디에게 라디오가 없으면 경기장 관전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때 내 머리에 궁여지책이 번득였다. 라디오가 없으면 우리가 라디오가 되면 된다.
“좋아. 그럼, 내가 중계를 할 테니까 마후디, 네가 해설을 맡아.”
“어, 그래. 그거 좋겠네!”
이렇게 해서 묘한 대화가 내야석의 한구석에서 시작됐다.
“피처 하야시, 머리 위로 높이 올리고, 제1구 던졌습니다, 스트라이크! 커브가 들어왔네요.”
내가 아나운서의 말투로 지껄인다. 그러면 마후디가 능숙하게 이어받는다.
“선발 하야시는 좋은 커브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진짜 해설자인 척 말한다. 정말이지 라디오 야구중계로 일본어를 배웠다는 걸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해설을 맡으신 마후디 씨, 하야시는 누구죠?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야시는 이번 시즌 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자이언츠의 기대주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가 던질 때마다 타선이 침묵해서 승리투수가 되질 못해요.”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괴상하다는 얼굴로 힐끔힐끔 살폈다. 당연하다. 야구장에 와서 ‘실황중계 놀이’를 끊임없이 하는 녀석들은 없다. 그것도 다른 관중의 함성에 지지 않도록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있다. 게다가 해설자는 분명 외국인이다.
나는 조금 창피했지만, 마후디는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위의 눈’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이 남자는 눈이 보여도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이 특이한 상황에 점점 흥분이 됐다. 이제 도쿄 돔은 ‘Tokyo Dome’이다.
--- <여덟, 도쿄돔의 뜨거운 밤> 중에서
도쿄의 한 커피숍에서 다카노 히데유키 씨를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한국어판 출판에 관한 협의를 끝내고 물었지요. “한국에서 나오는 다카노 씨 책을 어떻게 만들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하드커버였으면 좋겠다든지, 표지 디자인이라든지…….” 일본에서는 모든 책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다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문고판으로 다시 출간됩니다. 그런데 다카노 씨는 신작을 문고판으로 발표하는 유일한 작가입니다. 내심 저는 ‘단행본으로는 안 팔리니까, 문고판으로 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본심은 하드커버에 멋진 디자인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약간은 짓궂은 질문을 한 거지요(제가 만난 작가들은 대부분 이런 욕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의 질문 의도와는 다르게 다카노 씨는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건 상관없고 그냥 한국 독자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싼 가격이었으면 좋겠어요.” 저의 어리석은 질문에 그만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세상을 따뜻하고 여유롭게 바라보는 그의 세계관이, 그러면서도 순간적으로 자신의 전부를 불태우는 정열이 느껴집니다. 물론 무모하다는 느낌과 함께.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다카노 히데유키 씨의 유머와 재치,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정열 등 그의 여러 모습을 느끼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역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