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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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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의 재구성

: 기적의 상자를 건축적으로 작문하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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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82쪽 | 516g | 180*215*20mm
ISBN13 9788995889763
ISBN10 8995889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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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정진국
건축가 정진국은 한양대학교 공과대학과 프랑스 파리-벨빌 건축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프랑스 고등 사회과학원(E.H.E.S.S.)에서 위베르 다미쉬(Hubert Damisch) 교수의 지도로 예술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과 2005년에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였고, 서울공연예술센터 국제현상공모전 2등과 ‘전곡선사박물관’ 국제현상공모전 가작을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곤지암 주택(2005)’, ’토포하우스(2005)’, ‘경주 주말주택(2008)’, ‘고기동 주택(2010)’, ‘소금항아리(2010)’ 등이 있으며, 주요 저서로 『르 코르뷔지에가 선택한 최초의 색채들』(공간사), 번역서 『프레시지옹』(동녘) 등이 있다.
1994년부터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부 교수로 있으며, 현재 건축설계학제간연구실(Interdisciplinary Design Laboratory)을 중심으로 근대 건축과 지역성의 현실적 관계에 관한 인식을 가지고 연구, 실무, 교육의 균형을 이루는 건축적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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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건축을 설명할 때 자주 기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벽을 허물고 자질구레한 것을 몰아내, 형언불가공간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기적이란 일종의 ‘충격’, 즉 건축이 관찰자에 미치는 심각한 심적 자극으로서의 감동과 다르지 않다. 감동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탐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건축가에게는 자연을 포함해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언제나 감동을 유발하는 ‘시적 반응의 물체’이다. 기적의 상자는 일종의 ‘감동 기계’이다. --- p.12

‘상자’는 20세기에 성립한 근대 건축의 유형적 도상이다. ‘근대주의적 기획’에 따라 탄생하였으나 곧바로 독단과 편견을 가진 것으로 평가 절하되기 시작한 상자는, 피터 아이젠만이 일찍이 그 의미를 ‘파괴’했듯이, 추상적 형식 조작을 통해 분해 대상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상자는 오늘날 더 이상 지시하지도 상징하지도 참조하지도 않는다. 현대 도시의 비극의 책임을 상자에게 묻는다면, 그것은 직각 체계로 이루어진 육면체라는 상자의 형식성 이외 다른 어떠한 생각도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성립의 과정이 완전히 무시된 채 근대 건축이 국제양식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된 데서도 이미 상자의 운명은 예견되었다. --- p.13

근대 건축가들에게 상자는 조형과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의 역사가 뒷받침하는 구축적 질서의 문제였다. --- p.14

결론적으로 기하학적 형식의 상자는 외부 세계와 어떠한 형식적 유사성도 띠지 않으며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구축적 질서로부터 자연 발생적 절차에 따라 만들어졌다. 중요한 점은 상자의 탄생에 감정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된 사실이다. 즉, 정열情熱이 조건화되어 성립된 것이 상자이다. --- p.15

놀랍게도 세 저택에 나타난 정열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세 가지 건축적 사실에서 발견되는 정열의 문제와 일치한다. 부석사, 소쇄원, 종묘정전 등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어느 경우든 대상의 핵심에 도달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의식의 흐름에 따른 현상학적 접근으로써 대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나아가서 방법론적 측면에서 특별한 구축적 질서를 개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축의 본질은 구축적 질서에 있다. --- p.15

수묵화의 원근법이 가져다주는 황홀경 효과는 근경과 원경을 구성하는 형상들의 일탈적 배열에서가 아니라 바로 화가 자신으로 귀속되는 이러한 일탈의 마음, 즉 형상화의 기반이 되는 특별한 인식 행위로서의 마음에서 우선 발견되어야 할 사항인 것이다. --- p.29

궁극적으로 소쇄원은 인위적 사건으로 원림으로 조영되기 이전부터 있어온 무위의 자연이라는 원초적 무대를 오히려 사건으로 만든다. 무위가 인위에 의해 점유되어 사라지지만 인위에 의해 무위가 부각되어 나타나는 ‘역설’이 이곳에 있다. --- p.39

건축적 감동은 그러므로 가시적 존재의 ‘있음’에서 비가시적 존재의 ‘없음’으로 치환되는 과정을 통해 생산된 가득 찬 텅 빔이라는 순수한 공간적 단위에서 비롯된다. 르 코르뷔지에는 근대 건축의 기반이 되는 새로운 기술로 오히려 기술의 인위성을 부정하는 원초적 공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바로 이 원초적 공간이 입방체식 구성의 이름으로 ‘상자’의 형식을 빌려 20세기 과학과 기술의 시대에 충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 p.63

건축에서의 영원한 인식 토대인 구조와 형태의 상호관계만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성취가 바로 상자라는 역사적 참조체이다. 극히 한정된 체적을 가졌지만 그 속에서 엄청난 다양성이 연출되는 만화경과도 같은 이 상자가 나에게는 건축적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데 일관된 사고를 하게 만드는 인식적 모식이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쟁점이 된 친환경과 생태와 지속가능 역시 상자라는 형식을 빌린 근대 건축에 이미 강도 높게 입력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근대 건축의 상자는 그러므로 20세기에 제기된 건축 자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된 가설적 형식일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축은 결국 사고의 문제이지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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