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추운 날, 새벽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어머니는 곤히 자고 있는 나의 몸에 손을 얹고 나지막하게 기도하셨다. 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은 어머니의 손은 자고 있던 내 마음을 자극했고, 나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무의식중에 듣게 되었다. “하나님, 이 아들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이 아들이 공부를 할 때 지혜를 내려주시옵고, 이 아이가 무엇을 하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비록 무의식중에 들었지만 어머니의 기도에는 왠지 모를 힘이 실려 있었고 간절함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자신만의 특별한 자녀 교육법과 더불어 두 자녀를 위해 기도로 제단을 쌓으셨다. 그리고 그 제단은 우리의 삶에 축복의 열매가 되어 주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처음 받은 성적표에 적힌 내 학급 석차는 앞에서 세는 것보다 뒤에서 세는 것이 더 빨랐다. 50명 중 30등을 훌쩍 넘어선 성적표에 어머니는 실망하셨고, 나는 또다시 큰 걱정거리를 안겨 드렸다. (중략)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고등학교를 재수해서 들어가는 치욕은 상상도 하기 싫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를 악물고 공부하기 시작했다.…그리고 나는 기적처럼 1학기 중간고사 시험에서 처음으로 30등을 벗어나 17등을 했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면서 받은 등수 중에 최고였다. 그만큼 나는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던 것이다. (중략)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떠난 미국 유학에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만 첫 영어 시험에서 시험지가 백지로 보이면서 결국 빵점을 맞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영어 선생님은 누나를 학교로 불러 교직 생활 30년 동안 백지 답안지는 처음 받아본다면서 동생이 아무래도 ‘학습장애’가 있는 듯 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춤꾼에서 학습장애아로 낙인찍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