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전공 후 상담 관련 일을 해오다 작가로 전향했다. 제1회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에서 『이매망량애정사』로 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수(秀)라는 필명으로 『꽃들의 왕』을 연재했다. 인터파크도서 K-오서어워즈 공모전 5회차 최종후보작으로 『야수의 나라』가 당선됐고, 현재는 에브리북에서 『프린스 앤 프린스』를 연재하고 있다.
“아까 그자가 속임수를 쓰긴 했네. 그런데 그 속임수 말이야, 자기가 이기려고 쓴 게 아니었어.” “그게 무슨 소리요? 알아듣게 말을 해보시오.” 용팔이 애꿎은 송 씨에게 버럭 화를 내며 물었다. “다섯 판을 하면 그중 한두 판은 꼭 자네가 이겼는데 그 이기는 판에 모두 속임수를 썼단 말일세. 만약 자네가 내리 지기만 한다면 게임을 하지 않고 가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일부러 속임수를 써가면서 져줬단 말일세. 다시 말해 자네는 그 남자가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면 그 테이블에서 돈을 딸 확률이 거의 없다는 소리야.” (15쪽)
“연습한 게 맞아? 대답하는 데 10초나 걸려서는 실제 테이블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맞는 말이었다. 담배 연기와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음악, 오가는 술잔, 심리적 압박감을 모두 고려하자면 하우스 도박장에서의 카운팅 기술의 정확도와 시간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선영은 밤이고 낮이고, 카드가 다 닳아 없어질 정도로 카운팅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자 카드를 보자마자 확률부터 나오는 수준이 됐다. 그러나 재휘는 거기에 대해서도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카드 카운팅은 기본 중의 기본이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베팅이지. 노련한 겜블러는 백 번을 죽더라도 한 번의 기회가 오길 기다려. 다른 겜블러를 관찰하고 그 각각에 확률을 붙여야 해. 어떤 카드에 돈을 얼마나 거는지, 콜을 많이 부르는지, 레이즈를 자주 부르는지, 시드머니 대비 몇 퍼센트의 위험을 걸고 승부를 보는지 각 겜블러의 모든 확률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해.” (102쪽)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데, 용팔은 한마디 타박도 없이 마지막 살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선영은 끅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가슴만 움켜쥐었다. 진흙 구덩이에 빠졌던 인생을 겨우 건져내 보듬어줬건만, 이 따뜻했던 사람들을 제 발로 끊어냈으니 이보다 더 멍청하고 후회스러운 일이 뭐가 있을까.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울음으로 뭉개진 통곡 소리가 용팔의 전화로 흘러나왔다. 용팔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휘는 내가 어떻게든 해보마. 넌…… 넌 돌아와선 안 된다. 알겠니?” (169~170쪽)
선영은 오래전 용팔에게 들었던 얘기를 생각했다. 재휘의 친부를 강 회장이 죽였을 거라 생각하지만 증거가 없었다고 하던 바로 그 얘기였다. “강 회장은 내 친부에게 큰돈을 약속하며 선수로 끌어들였어. 그런데 그 이튿날 아버지는 변사체로 발견됐지. 아버지가 그 게임에서 이겼는지, 졌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어. 하지만 아마 아버지가 이겼더라도, 졌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거야. 아버지는 죽을 운명이었던 거지. 한 번 쓴 카드를 미련 없이 버리는 게 이 바닥의 룰이니까.” (218~219쪽)
“오선영, 내가 배신할 거라는 걸 언제 알았지?” “…… 당신이 강 회장의 파멸을 원한다고 말하던 처음, 그 순간부터요.” 추 마담은 씁쓸하게 웃었다. 선영의 처지에 그때의 제안은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달콤했을 텐데도 “생각해볼게요”라고 대답했었다. “그걸 알아봤다니 대단하군.”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거든요.” 추 마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선영이 강 회장을 테이블에 앉히지 못했더라면, 강 회장을 이기겠다는 그 마음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승리했더라면 절대 그녀가 선영을 구해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진짜 승자는 당신이었어.” 추 마담은 허탈한 웃음을 끝으로 홀 밖으로 사라졌다. 선영은 재휘의 입에 물려 있던 재갈을 벗기고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재휘는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선영은 축 늘어진 그를 보듬고 엉엉 울었다. “집으로, 집으로 갈 시간이야. 오빠.” (271~2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