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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운구
2장 │ 겨울 3장 │ 제안 4장 │ 대장 5장 │ 퓨마 6장 │ 씨앗 7장 │ 구멍 8장 │ 낙원 9장 │ 엄마 10장 │ 선거 작가의 말 대한민국 인구 통계(2025~207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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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뱃속엔 죽음이 있었다.
그녀는 울음으로 그 죽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녀는 애써 참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 울음은 비명보다 작았으나 슬픔보다 어두웠다. 수술방은 그녀가 뱉어낸 비통으로 가득했고, 얼마나 짙었으면 수술을 준비하던 간호사들은 저도 몰래 북받치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 「1장 ‘운구’」 중에서 인구정책부 차관이 된 친구에 대한 축하와 인구정책부에 대한 조소가 뒤섞인 뼈 아픈 농담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칠십 년 동안 이뤄진 한국의 인구정책에 대한 가장 명료한 평가이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쪼그라드는 인구수를 뒤집기 위해 그 어느 정책보다도 더 많은 돈을 인구정책에 썼다. 하지만 모든 정책이 실패로 끝났을 뿐만 아니라 인구 감소를 오히려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가장 큰 재원과 인력이 투입되었던 〈선택과 집중〉이 끝나자 그 누구도, 심지어 인구정책부까지도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었다. 마치 올인 후 모든 자산이 털려버린 도박쟁이처럼. 인구 회복의 의지는 꺾였고, 한국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 「2장 ‘겨울’」 중에서 “차관님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사람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자고 하셨는데, 그렇게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이라 볼 수 있겠습니까? 차관님은 당장 길거리에서 아무나 한 명 데리고 집에 들어가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겠어요?” 동연은 대답이 없었다. 장관은 계속했다. “결국 차관님이 만들어내고 싶으신 건 인조인간입니다. 그것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정말 모르시겠어요?” 동연으로서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동연도 자신의 제안이 채택된다는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 나라 전체가, 다 같이 정신병자가 되겠다는 생각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런 정신병자 같은 생각 말고 다른 해결책이 없는 이 나라는 이미 정상 국가가 아닐지도 몰랐다. --- 「2장 ‘겨울’」 중에서 “그리고 2024년, 정부에서 인구정책부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몇 가지 행정적 문제를 거치고 나니 해가 넘어갔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2만 명이 더 줄어 있었죠. 그렇게 시간에 쫓기듯 인구정책부는 2025년 공식 출범했습니다.” (···) “하지만, 인구정책부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마땅히 다른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당연할지도 모르겠군요. 결혼과 출산이라는 지극히 오래된, 고대의 행위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자연의 섭리에 관여할 수 있는 인위적인 요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올해로 인구정책부가 설립된 지 두 해째. 태어나는 아이의 수는 15만 명, 합계출산율은 0.46입니다. 이제 한국인의 멸종이 눈앞에 왔습니다.” --- 「3장 ‘제안’」 중에서 “출산율이 올라가면 이민자 문제도 줄어들까요?” 현준이 동연에게 물었다. “그럴 겁니다. 그럼 제가 이 총리님의 질문을 바꿔서 말씀드리죠. 대통령님은 이민자 없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희생할 수 있으십니까?” 동연이 물었다. 현준은 네카르의 흰 눈동자를 떠올렸다. 문이 닫히고, 공장은 화염에 휩싸였다. 겨우 혼자 빠져나왔고, 사흘이 지나서야 병원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엄마와 명덕이 삼촌의 시신은 찾지도 못했다. 대부분 재가 되어버렸다. 남은 뼛조각 몇 개는 발견했지만, 엄마 것인지 다른 사망자들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집무실 한편에 틀어놓은 뉴스 화면 속에서는 특공대장이 부산 사태의 종식을 선언하고 있었다. 현준은 잠시 숨을 멈췄다. 무엇을 희생할 수 있냐고? “모든 걸.” --- 「4장 ‘대장’」 중에서 “차관님께는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동연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숫자입니까, 인간입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조훈은 동연을 묵묵히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전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길 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인구재건사업〉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에요. 내일의 결과는, 저의 의도가 아닐 겁니다. 그러니 제가 당신을 지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 최선을 다해 대통령님을 보좌할 것이지만, 동시에 최선을 다해 〈인구재건사업〉을 막을 겁니다.” 조훈은 그 말을 끝으로 홱 돌아 거리 저편으로 멀어졌다. 동연은 조훈의 말의 의미를 헤아리기 위해 한참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초겨울의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동연의 이마를 훑고 지나갔다. --- 「5장 ‘퓨마’」 중에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아십니까? 거기엔 거대하고 굵고, 빠른 속도로 울창하게 자라는 ‘바오밥나무’라는 나무가 등장합니다. 거대한 그늘이 되기도, 여러 생물의 서식지와 양분이 되기도 하지요. 여러분, 대한민국을 구할 바오밥나무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습니다.” --- 「6장 ‘씨앗’」 중에서 “나도 하고 싶어.” “뭘?” 동연은 무슨 말인가 하며 지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원은 망설였다. “난임부부를 위한 대리모. 나 그거 하고 싶어. 나 이번엔 정말로 아기 갖고 싶어.” 동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동연이 지원에게 대리모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던 날, 지원이 놀란 표정을 지은 것은 프로젝트의 비윤리성 때문도, 자신의 아픔과 닿아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남편의 매정함 때문도 아니었다. 지원은 희망을 발견한 것이었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 동연은 지원의 구멍 가장 밑바닥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지원은 변해 버린 것이 아니었다. 여태껏 그 희망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동연은 그런 지원이 또 안쓰러웠고, 그제야 그것을 깨달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 「7장 ‘구멍’」 중에서 동연은 오래전부터 〈인구재건사업〉으로 태어날 첫 아이들을 뭐라고 부를지 고민했었다. “얼마 뒤 사업 개시 기념식에서 공개될 다섯 명의 아이들을 포함, 올해 태어날 총 스무 명의 아이들을 특별한 이름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어떤 이름?” 재언이 물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이 과학으로 만들어낸, 부모가 없는 최초의 아이들입니다. 부모가 없다는 건 이들이 곧 시조라는 말이기도 하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인간입니다.” 동연의 말은 문학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예준은 가끔씩 이렇게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뽐내며 일장 연설을 하는 상사에게 오글거림을 느꼈고, 이설은 매력을 느꼈다. “이 아이들은 ‘아담과 이브’라고 불릴 것입니다.” --- 「8장 ‘낙원’」 중에서 온 광화문 거리에 아이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순간 그 시끄럽던 시위 소리가 잦아들었다. 심지어 트럭이 불타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우렁차게 우는 아이 외에 그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인구재건사업〉을 맹렬히 비판하던 여성단체와 종교단체도, 생식세포법에 반대하던 의원들도, 시위를 벌이던 이민자들도, 트럭 화물칸에서 겨우 살아나온 라오스 부부도. 모두들 침묵으로 새 생명에게 축복을 보내고 있었다. 서로의 입장이 달라도, 살아남기 위해 물고 뜯고 싸워야 하더라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저 아이들이 더 밝은 미래를 가져와 주길. 그리고 저 아이들만큼은 평안한 세상에서 살아가길. --- 「8장 ‘낙원’」 중에서 하지만 섹스로봇은 달랐다. 인공마음은 언제나 사용자의 감정을 정밀하게 분석했고, 언제나 정서 발달에 좋은 말들만 해줄 수 있었다. 아이의 발달에 중요한 눈 맞춤과 표정으로 반응하기, 대화 등도 역시 해줄 수 있었다. 게다가 신생아에게 의학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중요한 젖 빨기 역시 가능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조피부는 아이들의 안정과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초반 구입비와 전기료만 제외한다면 들어가는 비용도 적고 24시간 동안 가동 가능했다. 수십만 명의 엄마 없는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인구정책자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까? 사람 엄마일까, 로봇 엄마일까? --- 「9장 ‘엄마」 중에서 그때 지원은 깨달았다. 자신의 가슴 위에서 곤히 자는 아이, 그런 아이와 지원을 내리쬐는 과하지도 적지도 않은 딱 적절한 햇살, 지원의 호흡에 맞춰 새근새근 숨을 쉬는 아이. 지원은 그제야 주현이 자신의 아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 「10장 ‘선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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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인의 멸종이 눈앞에 왔습니다.”
추락하는 한국을 낙원으로 만들기 위한 인공인구 프로젝트 MZ 세대가 어느덧 노인으로 살아가는 2060년대 말. 국민연금은 개혁에 실패하며 이미 증발해 버렸고, 정부가 국가 디폴트를 선언한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한반도를 탈출했다. 수도권과 부산을 제외한 지역은 무인지대가 되어버린 지 오래고, 모자란 노동력을 채우고자 대규모로 받아들인 이민자들이 세를 불리며 물에 떨어진 기름방울처럼 한민족 한국인과 뒤섞이고 있다. 2025년에 비해 인구는 반토막 나고 합계출산율은 0.12명으로 곤두박질친 미래 한국. 소설의 첫 장면 ─ 유산한 젊은 여성의 뱃속에서 앳된 죽음을 꺼내는 제왕절개 수술 장면은 디스토피아 한국의 초상으로 다가온다. 소수 부유층을 위한 사립학교 출신의 엘리트 이동연은 인구정책부 1차관에 올라 새로운 프로젝트 〈인구재건사업〉을 제안하지만, 반윤리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에 국무회의를 통과하지도 못하고 묻힌다. 그런데 반년 뒤 부산에서 일어난 이민자 폭력 시위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인구재건사업의 핵심 법안인 「생식세포법」이 각자의 이권을 지키려는 정치적 암투 속에 국회를 통과한다. 국가가 전면에 나서서 국민으로부터 정자와 난자를 채취하고 헌혈처럼 기증을 유도하는 동시에, 해외로부터 대리모를 수입하는 등 한국인을 낳을 대리모를 고용한다. 새서울 외곽의 텅 빈 아파트 단지를 대리모들의 집단주택단지로 바꾼 ‘낙원’ 마을에서 마침내, 국가가 부모인 최초의 아이들이 태어나는데…. 동연의 바람대로 이 아이들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아담과 이브’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숫자입니까, 인간입니까?” 각자의 신념과 욕망이 뒤얽히며 최선 또는 최악을 향해 소설은 동연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신념과 욕망으로 서로를 향한 배척과 협력의 서사를 겹겹이 쌓아간다. 산과 의사인 설재언은 오랜 친구인 동연의 설득에도 인구재건사업의 요직을 거절하지만, 자신의 십 대 환자가 난자 기증 점수를 얻기 위한 과배란 유도제의 부작용으로 사망하면서 재언은 각성한다. 동연의 아내인 지원은 난임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중, 남편의 인구재건사업으로 대리모가 공인되자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다. 국무총리 이조훈과 인구정책부 장관 박이현은 각자 동연에게서 과거에 인연 또는 악연으로 얽혔던 인물의 모습을 겹쳐 보며 동연을 뒤흔든다. 결국 그 악연이 인구정책부의 미래를 결정할 대통령 선거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는 등 소설의 결말까지 이들의 서사가 빈틈없이 단단히 얽히고설키며 넷플릭스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소설의 백미는 2068년에서 사십 년이 흐른 2108년의 장면이 교차되며 암시와 복선을 주고받는 이야기 구조에 있다. 2108년 12월 인구조절기획실장 후보자가 된 이동연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는데, 그를 향한 날 선 질의와 참고인 진술이 이어지면서 인구재건사업이 품고 있던 모순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렇게 사십 년의 시차를 둔 장면을 오가면서 독자는 작가가 던져놓은 묵직한 질문을 건져올리게 된다. 한민족의 유전자를 지닌 생식세포만 사용하는 것은 이민자를 향한 유전자 차별인가, 러시아인 대리모의 증언을 들으며 생명 윤리는 다수의 합의하에 수정 가능한 영역인가, 난자 채취 피해로 딸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 앞에서 공동체의 보전은 개개인의 인간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가치인가…. 두 이야기의 선이 점점 중첩되며 선명해지는 인구재건사업의 진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소설의 끝에 다다른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를 향한 거대한 복선이 마지막 문장에서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