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채 기간이 되면 비등비등한 스펙의 입사지원서가 쏟아져 들어온다. 입사지원서에 적힌 스펙을 보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정말이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누구는 합격하고 누구는 탈락한다. 사실 어느 정도의 요건만 충족하면 스펙은 무의미해진다. 그러면 취업의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대기업 인사담당자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경우를 봤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회사와 여러분의 시각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여러분은 ‘현재’를 말하려 하고, 회사는 여러분의 ‘미래’를 듣고 싶어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 사람의 준비된 토양만 확인된다면 충분하다. 입사 후 어차피 연수와 교육, 오랜 훈련을 통해 그 기업에 맞는 사람으로 가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회사의 비전과 색깔에 동화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를 좁힌 사람이 최종 합격할 확률이 높다.
스펙을 통해 ‘현재’를 어필하려 하기보다는, 비전과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당신의 미래를 보여줘라. 회사가 원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라고? 몰라서 스펙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고? 내가 만나본 후배들의 99퍼센트가 이런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고, 아니 그전에 내가 취업준비생이었을 때도 사실 이런 시각차 자체를 아예 인식하지 못했다. 알려주는 선배가 있었더라면 내 인생의 낭비를 얼마나 많이 줄일 수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아쉽다.---「프롤로그」
대졸공채 신입사원 모집기간이 되면 각 계열사에서 차출된 인사담당자들은 한 장소에 집결된다. 그리고 한 방에 갇힌다. 그 방에서 탈출해 퇴근하는 방법은 수천 장의 자기소개서를 모두 읽어 선별을 마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서류전형을 진행하다 보면 의외로 회사 이름이 잘못 쓰인 지원서를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LG전자에 지원서를 냈는데 자기소개서 중간에 ‘삼성전자’라고 쓰여 있고, 롯데마트에 제출한 지원서에 ‘이마트’라고 적혀 있는 식이다. 수십 곳의 회사에 묻지마 지원을 하다 보니 본문에 들어간 회사 이름을 수정하지 않은 채 지원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이런 자기소개서는 당연히 100퍼센트 탈락이다. 맞춤법의 오류나 오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인사담당자의 마음을 훔칠 정도로 잘 쓴 지원서라도 탈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지원자의 기본적인 태도와 자질 때문만이 아니라 좀 더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서류전형에 합격한 지원자들은 앞으로 몇 번의 면접전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는 임원 면접도 포함되어 있다. 면접 시 임원들의 책상에는 지원자의 자기소개서가 올려진다. 그런데 임원이 우리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의 이름이 버젓이 들어간 지원서를 발견한다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그 회사 이름이 경쟁사라도 되는 날에는 날벼락이 떨어진다. 특히 동일 업종의 경우 자기소개서 항목이 비슷하기 때문에 전에 써놓은 내용을 그대로 붙여넣는 사람이 많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 우리 회사 지원서에 경쟁사 이름이 쓰여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점점 임원의 심기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오탈자 및 틀린 맞춤법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면접 후 바로 인사담당 부장이 불려갈 게 뻔하다. 임원에게 한소리 들은 부장은 인사담당자들을 소집한다. “지원서를 졸면서 읽었느냐, 지원자들 수준이 왜 이러냐!” 등 한바탕 난리가 예상된다. 회사원이라면 누구라도 상사를 화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회사 이름 오류, 오타, 맞춤법 실수가 많은 지원서는 당연히 1차 탈락 기준이 된다. ---「서류전형의 당락을 좌우하는 작은 실수들」
당신이 막연히 스펙 열풍에 편승해 토익을 준비하고, 봉사활동을 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공모전 수상 경력이 있어도 인사담당자들 눈에는 그저 평범한 스펙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 인사담당자들은 최강의 스펙을 자랑하는 지원자들을 만나도 그저 무덤덤할 뿐이다. 화장발, 성형발, 조명발에 이은 스펙발에 이미 여러 번 속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펙이 아닌 지원동기 및 포부를 눈여겨본다.
지원동기 및 포부는 회사 이름이 아닌 본인이 하고 싶은 직무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어야 제대로 작성할 수 있다. (…)
당장 취업이 절박한 우리들은 입사만 하면, 저 회사에만 들어가면 천국의 문이 열리고, 불행 끝 행복이 시작될 것 같다. 하지만 어렵게 들어온 회사를 1년 이내 그만두는 신입사원의 비율은 평균 30퍼센트를 웃돈다. 열 명 중 세 명은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가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들이 맹목적으로 ‘저 대학에 들어가고 싶다’며 공부하던 고3 시절과 똑같은 식으로 취업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입사를 하면 전공이 맞지 않아 방황하던 캠퍼스 시절처럼 신입사원 사춘기를 겪게 된다.
회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한 곳이다.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그걸 보고해야 하는 상사가 있으며, 내가 내야 하는 성과가 지표로 관리된다. 정해진 근무시간뿐 아니라 가끔씩 혹은 매주 주말까지도 출근을 한다. 그런 곳이 회사다.
학부시절에는 전공이 내 적성과 맞지 않아도 그럭저럭 버틸 만했을 것이다.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가기 싫은 날은 안 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직무는 차원이 다르다. 잘못했다가는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월 160시간, 연 4,992시간 동안 싫은 일을 억지로 참으며 괴롭게 보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종류를 입사 전부터 깊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름 보고 대학 가니 행복하던가」
나는 우리 인사담당자들과 지원자들의 관계가 마치 서로 너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남녀사이 같다.
과연 회사에서는 어떤 지원자를 채용할까?
화성에서 온 나 : “삶의 선택지가 많은 사람과 일하고 싶다.”
금성에서 온 지원자 : “스펙을 많이 쌓아야 취직할 수 있어.”
인사담당자들은 다양한 삶의 선택지를 갖고 있는 지원자를 채용하고 싶어한다. 대학시절 노점상에서 액세서리를 팔아본 지원자에게서는 어느 기업에나 필요한 장사꾼 마인드 및 뛰어난 문제해결 능력을 기대해볼 수 있다. 해외 배낭여행을 갔다가 소매치기 때문에 혼자 여행경비를 현지 조달해야 했던 지원자라면 그의 위기대처 능력 및 자신감 넘치는 성격을 알 수 있다. 마라톤을 해본 지원자에게서는 인내심과 성실함 등을 엿볼 수 있다. 봉사활동 경험을 통해서는 협동심 및 남을 배려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의 선택지에는 대학생 외에도 노점상, 거리의 악사, 마라토너, 자원 봉사자가 추가된 것이다.
스펙을 쌓기 위해 일부러 장사를 하고, 소매치기를 당하고, 취미에도 없는 마라톤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연스럽게 넓어진 삶의 선택지를 통해 스며들 듯 ‘진짜 스펙’이 쌓이게 된다. 학벌, 학점, 토익 등은 그런 점에서 ‘가짜 스펙’에 가깝다.
삶의 선택지가 넓은 지원자와 함께 일하고 싶은 이유는 회사라는 곳의 특성 때문이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팀플레이를 하는 곳이다. 혼자 잘나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협업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떨어지는 역량이 바로 이 ‘협동심’이다. 반면 삶의 선택지가 넓은 구직자들은 다양한 곳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협업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스펙 쌓아서 취직해야지’ 하는 마음을 삶의 선택지를 넓히는 쪽으로 바꿔보라. 목적 없이 시작한 진짜 스펙이 인사담당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회사는 이런 사람과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