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고 사람들은 묻는다. 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탈리아의 공작들과 공작 부인들, 그리고 프랑스의 국왕까지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간청하는 마당에 하필이면 별 볼일 없는 피렌체 상인의 두 번째 부인에게 초상화를 그려 준 걸까? 사람들은 묻는다. 왜, 도대체 왜일까?
그 해답은 살라이한테 있다.
'살라이한테 있다.'는 말은 딱 맞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살라이는 거짓말쟁이니까.
살라이, 그러니까 잔 자코모데 카프로티는 좀도둑이기도 했다. 이것은 레오나르도가 직접 한 말이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독특한 거울 글씨체로 자신의 공책에 살라이를 '거짓말쟁이', '도둑', '고집불통', '먹보' 라고 썼다.
레오나르도가 살라이에 대해 처음 쓴 글은 다음과 같다.
자코모는 1490년 성 막달라 마리아의 날에 우리 집에 왔는데, 나이는 열 살 이었다. 다음 날 나는 그 아이에게 웃옷 두 벌과 반바지와 조끼를 맞춰 주었다. (…)
다음은 이렇다.
다음 해 1월 26일, 축제 준비를 하기 위해 메세르 갈레아초다 산 세베리노의 집에 갔는데, 병사들이 축제 의상을 입어 보는 사이에 자코모가 그들의 옷과 함께 침대에 있던 지갑에서 돈을 훔쳤다.
그 다음은 이렇다.
(…) 이 자코모란 아이는 내 터키제 가죽을 훔쳐다가 구두 수선공에게 20솔디에 팔아 넘기고는, 그 돈으로 아니스 과자를 샀다고 나중에 실토했다.
그 뒤로는 살라이가 도둑질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레오나르도의 가계부에는 살라이가 계속 등장한다. 이런 내용도 있다.
30스쿠도가 있었는데, 그 중 13스쿠도는 여동생의 결혼 지참금에 보태라고 살라이한테 주고 17스쿠도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살라이는 레오나르도의 유언장에도 나온다.
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하인 살라이에게 밀라노 성 밖에 있는 농지의 반을 유산으로 남긴다. 그 농지에 살라이가 지은 집은 앞으로 살라이 자신과 그의 상속인과 후손들의 재산이 될 것이다. 이것은 내 하인 살라이가 지금까지 성실하고 친절하게 봉사해 준 데 대한 보답이다.
사람들이 묻는다. 왜, 도대체 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거짓말재이에다 좀도둑인 살라이를 쫓아내지 않고 곁에 두었을까? 그렇게 오랫동안 왜? 왜 레오나르도는 살라이한테 여동생의 지참금을 빌려 주고, 유언장에까지 이름을 올려놓은 것일까?
왜?
그 해답은 이 책에 있다.
--- pp.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