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2월 13일 도쿄 출생.1916년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貧しき人?の群』를 발표.1919년 10월 아라키 시게루荒木茂와 결혼.1930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 가입. 1932년 2월 미야모토 겐지宮本?治와 결혼.1946년 『반슈평야播州平野』(3월~47년1월)를 발표.1948년 『풍지초風知草』(9월~11월) 『文藝春秋』에 연재.1951년 1월 21일 급성 뇌수막염균 패혈증으로 사망. 향년 52세.
“예전의 탄압이나 고생이 너무 심했으니까, 지금도 아직 공포스러워 할 수도 있겠지.” “그 점만을 일방적으로 과장해서 아는 척을 하는 것이 견식이라고 생각하는 묘한 패거리도 있고……. 치안유지법이란 것이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것이 어떤 짓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요.” 잠시 잠자코 있던 쥬키치는 히로코의 이해를 구하려는 듯이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 제일 어울리는 일을 해도 좋다는 것은, 작가라면 작가로서 일상에 역사적인 책임을 구할 수 없다는 건 아니잖아.”---p.321
그곳에는 철창이 채워져 있어 구름밖에 보이지 않고, 오호츠크 해를 건너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높은 창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몸이 큰 쥬키치가 바랜 적토색의 죄수복을 입고, 밤송이머리를 하고, 종일 그렇게 바느질을 하고 있다. 쥬키치의 살아있는 정신과는 상관없이 그것이 규칙이라며, 아침마다 그에게 떠맡기는 엄청나게 많은 양. 어떤 소리도 용납되지 않는 기계적인, 그렇기 때문에 무한하게 이어지는 참혹함. 아무 감정 없이 즐겁게 바느질을 하고 있는 쥬키치가 마지막 매듭을 짓는 것을 히로코는 기다리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