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배낭을 테이블에 모두 올려놓고 살펴보니 생수가 보이지 않는다. 급하게 슈퍼에 가서 생수를 샀다. 그나마 미리 발견해서 다행이다. 물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뻔 했다. 혹시나 빠진 다른 물건은 없을까 걱정이 된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가니 달리기 시합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출발 시간인 한 시 반이 되기 전에 군청 현관 앞에 모여서 기념 촬영을 한다. 답사팀과 문화관광과 직원, 각 부서 직원들이 먼 길을 떠나는 우리를 격려하면서 용기를 북돋아줬지만 대원들 모두 걱정이 되는지 기념사진을 찍는데 다들 표정이 어둡다. 조인묵 부군수님도 친히 나와서 격려해 주신다. 이제 진짜로 출발이다!
기분이 묘하다. 누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무엇을 잘못해서 벌을 받아 귀양 가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서울로 걸어서 가게 된 것인지 도무지 잘 모르겠다. 127년 전의 길을 스스로 간다는 것 밖에는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직원들과 군청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머나먼 서울로 향한다. 17~18쪽
역시나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정강이와 무릎에 출혈이 생겼다. 대원들의 사기가 더 한풀 꺾이는 것 같았다. 원인은 대원들의 복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응급처치로 일단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 등산로 방향으로 조금 오르니 지도상에서 확인한 임도가 나왔는데, 이제부터는 일이 좀 순조롭게 풀려서 이정표를 따라 걸어가니 드디어 문재 정상에 이르렀다! 옛길을 찾다가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갖은 고생 끝에 이른 곳이니 완전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앞으로의 일정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우리는 순간을 만끽했다. 67쪽
오는 내내 누군가 계속 우리를 뒤따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 명이 걷는데 한 여덟 명은 동행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오횡묵 군수님과 그 일행이 아닌가 싶다. 임금님께서 정사를 보는 대전에 부복하여 아뢰었을 오횡묵 군수님을 생각하며 한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정선 총쇄록은 정선의 자랑스러운 보물이기 때문이다. 100년 전 모습을 사진 찍듯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선의 국보라고 감히 자부하고 싶다. 언젠가 정선의 모습을 100년 전에 쓰인 이 기록대로 재현해본다면 어떨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선을 알고 아리랑을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참 많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여정이었다. 100년 전에 기록된 마을 이름에 관해서 많은 부분의 실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유익한 시간이었다. 누가 뭐래도 아리랑 로드는 지금 여기에 살아 숨 쉬면서 존재하고 있다. 1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