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나의 게걸스러운 탐구는 유치했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식으로 초점도 없이 욕심만 사나웠지만―나에게 한 입의 포크너는 한 입의 플로베르일 뿐이었다―그러나 얼마 안 가서 곧 나는 미묘한 차이점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먼저 각각의 책들이 냄새가 다르다는―달콤하고, 씁쓰름하고, 시큼하고, 달콤 쌉싸름하고, 악취가 나고, 짭짤하고, 알싸하고―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또 각각의 냄새가―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감각이 점점 더 예민해져서 각각의 페이지, 각각의 문장, 그리고 마침내는 각각의 단어가―일련의 이미지들, 내가 이른바 현실 세계에서 나의 극히 제한된 경험으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심상들, 이를테면 마천루, 항구, 말, 서로 잡아먹는 동물들, 꽃나무, 흐트러진 침대, 물에 빠진 여자, 하늘을 나는 소년, 잘린 머리, 뗏목, 자작나무 숲으로 비스듬히 비쳐드는 햇살, 맨살이 드러난 허벅지를 애무하는 손, 정글 속의 오두막, 죽어가는 수도사 같은 심상들을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처음엔 그저 맛의 지시에 따라 즐겁게 갉고 씹으며 먹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곧 나의 식량 가장자리들을 여기저기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많이 읽고 점점 더 적게 씹어서 결국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읽는 데 썼고 단지 여백들만 조금씩 씹었다. --- pp.36-37
나는 모든 소설을 사랑한다. 시작과 중반과 결말의 모든 전개 과정을 다 사랑한다. 서서히 축적되는 의미들이며 안개 낀 풍경 같은 상상이며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산책로며 나무들이 우거진 경사지며 거울처럼 잔잔한 물웅덩이들이며 비극적인 뒤틀림과 익살스러운 곱드러짐까지 모두 사랑한다. 내가 참아낼 수 없는 것은 생쥐를 포함해서 쥐가 나오는 문학이다. --- pp.69-70
나는 이틀씩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바이런을 읽곤 했다. 또 『폭풍의 언덕』을 읽고서 내 이름을 히스클리프(『폭풍의 언덕』에서 여자 주인공 캐서린과 비극적인 사랑을 나눈 남자 주인공-옮긴이)로 바꾸기도 했고. 나는 등을 대고 누워 내 엄지발가락을 보았다. 그러고 난 다음에 힘이 더 솟아난 기분으로 내 일에 몰두하곤 했다. 나는 제이 개츠비(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옮긴이)였다. 또 뒤로 펄쩍 뛰는 대단한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내 일을 계속해나갔고 겉보기로는 예나 다름없이 상냥했다. 그러니 내가 찢어진 가슴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 수 있었을까.
매일 아침마다 노먼과 나는 「보스턴 글로브」를 읽었다. 구인광고까지 포함해서 그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세상 물정에 밝은 시민이 되었으며, 신문에서 ‘일반대중’이라고 언급한 것을 보게 되면 자기도취적인 자부심으로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 pp.100
제리는 이야기를 하고 나는 들었다. 차츰차츰 나는 그의 삶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었던 반면, 그는 내 삶에 대해서 점점 더 적게 알게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의 타고난 과묵함으로 인해 그는 내 개성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즉 나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곧 그가 나를 볼 때 주로 보는 것은 촌스럽고 약간은 멍청한 귀여운 동물, 뻐드렁니를 한 아주 조그만 개 같은 동물이라는 것이 고통스럽게도 분명해졌다. 그는 내 진정한 성격, 내가 실제로는 상당히 냉소적이고 적당히 심술궂은, 생각에 잠긴 천재라든가 내가 그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나는 제리를 사랑했지만 제리가 사랑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언제나 알고 있었다. 비록 내가 아닌 척하고 싶어 하더라도 우리가 함께하는 저녁 시간에 그가 술을 마시며 이야기할 때 그는 사실상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 pp.20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