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1997년에 《벨라스케스의 신비》로 스페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어린이·청소년 문학상인 라사리요 상을 받았다. 다른 작품으로 《구름과 아이들》 《이름을 찾은 연필》 《엘리아세르 칸시노가 들려주는 베케르의 전설》이 있다. 2009년에 《바벨탑의 쪽방》으로 제6회 아나야 어린이·청소년 문학상을, 이듬해에 스페인 문화부가 주는 스페인 어린이·청소년 문학상을 받았다.
역자 : 김정하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 그리고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스페인 문학을 공부했다. 스페인어로 된 좋은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집으로 가는 길》 《아버지의 그림 편지》 《병사와 소녀》 들이 있다.
앙헬은 노르 생각이 났다. 가방을 찾아서 다시 편지를 꺼냈다. 노르는 왜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분명 앙헬에게 그 이상은 부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르가 무언가를 바란다는 사실은 알았다. 노르 자신에게도 말하기 두려운 것을. 도와주세요. 함께 있어 주세요. 동생 찾는 것을 도와주세요. 만일 노르가 자기 아들이었다면 혼자 가게 놔뒀을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채 불행에 빠질 수도 있는 길을 가게 놔뒀을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상을 보며, 그의 무관심이, 모든 것을 잊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한층 더 인간답지 못하게 느껴졌다._ --- p.51
노르도 두 사람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십 미터쯤 가까워졌을 때 왠지 그들 같았다. 그러다 삼십 미터쯤 가까워졌을 때, 모래 폭풍 한가운데서, 소용돌이치는 바닷가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이 자신의 선생님인 앙헬이라는 것을 알고 마주 달려오기 시작했다. 라시드가 이들에게 다다를 때까지, 앙헬과 노르는 꼭 끌어안고 있었다. 마침내 둘은 떨어져서 서로 바라보았다. 노르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앙헬의 눈동자도 금방 눈물을 쏟아 낼 듯 반짝거렸다. 라시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감격에 겨워 그 느낌을 그리워했다. 여러 해 전부터 잊어버렸던 감정이었다. --- p.213
앙헬은 별을 보면서 젊은 시절에 수없이 되뇌었던 파스칼의 말을 떠올렸다. ‘저 무한한 우주의 침묵이 나를 떨게 한다.’ 이 말과 함께, 지금 그 순간 앙헬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일도 아주 사소한 것, 아주 사소한 일상, 그저 살아야 하는 일임을 새삼 깨달았다. 반대로 별이 빛나는 저 우주에는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 위에 펼쳐진 하늘일 뿐이었다. 대기권이 지닌 형태일 뿐이었다. 그 어떤 표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우주를 바라보는 앙헬의 내면에 어떤 변화가 일고 있었다.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었다. 앙헬은 뒷날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인간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존재라고. 그 미래는 우리 자신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 p.234
이미 때가 늦었다는 루시아의 표현이 마음 아팠다. 왠지 모르지만 늘 마음에 걸리는 표현이었다. 갑작스레 몰려들었던 긴장감에서 벗어나자,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늦었다는 표현을 증오하게 된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