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떠난 뒤로 흙덩이처럼 방 안에 앉아 하루 종일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단다. 앉아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가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구나. 혹은 책을 펼쳐놓고 한숨을 내쉬고, 혹은 밥상을 앞에 놓고 탄식하며, 혹은 그림자를 보며 중얼거리기도 한단다. 산을 보아도 네가 떠오르고, 물가에 가도 네가 떠오르며, 평대의 솔바람 소리를 들어도 네가 떠오르고, 달밤에 작은 배를 보아도 네가 떠오르니, 언제 어디서나 모두 네 생각뿐이로구나. - 036페이지
이렇게 울부짖는 지금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하여 근처의 온 산천이 모두 빛을 잃는 것 같구나. 지하에 있는 너도 아픈 이 아비의 마음을 알고 있느냐. - 049페이지
다시는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네 모습과 네 목소리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단 말이냐. 네가 책 읽던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고, 마당을 지나던 네 모습이 눈앞에 선연하다. 이름을 부르면 금세 답하며 달려올 것 같고, 손을 내밀면 금세 네 손이 잡힐 것만 같구나. 하지만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음에 눈물이 끝도 없이 흐른다. - 053페이지
아무것도 모른 채 방에서 놀고 있는 어리고 철없는 두 딸은 누가 돌보며, 시집갈 때 누가 그 짐을 꾸려 주리오. 아, 이제 다 그만이다. - 133페이지
생각해보면 즐거웠던 기억은 많았는데, 세월은 덧없이 길고 그 사이에는 대부분 이별의 근심을 괴로워하고, 가난을 걱정하고, 괴로워하면서 보냈으니 아, 인생의 덧없음이 마치 꿈결과도 같구나. 남매로 지낸 날들이 어찌 그리도 빨리 지나갔더란 말인가. - 162페이지
파뿌리처럼 머리가 하얗게 샌 어머니는 관을 어루만지며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를 가냐”라며 통곡하고, 아름답고 연약한 아내는 어린아이를 안고 울면서 말하기를 “우리 낭군이시여, 우리 낭군이시여! 어머니와 어린아이를 버려두고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하는데, 어린 딸은 응애응애 울며 슬픔을 알지 못하니 비록 자란다 한들 어찌 아버지의 얼굴이나 알랴. 그대도 아마 저승에서 눈물 흘릴 것이다. - 215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