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수백 명의 사람과 동물이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이 싸늘하게 침묵에 잠겼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이는 필시 죽음의 침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방향에서 남자들 무리가 하나 더 나타난 거예요. 무리 중 노란색과 흰색이 섞인 커다란 터번을 쓴 사람도 보이더군요. 터번을 쓴 남자는 처음 온 남자들과 말을 주고받더니 말 머리를 우리 쪽으로 돌리고 한 발 한 발 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대상들을 둘러싼 대형을 더욱더 좁혔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휩싸여 눈을 질끈 감았죠. 그리고 오직 남자들의 공격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워낙 무서우니까 젊음의 혈기고 뭐고 없었어요.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우리는 서로 쳐다보지도 못했죠.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엘 카스미 선생님이 터번을 쓴 남자를 향해서 낙타를 몰았습니다. 낙타가 서로 가까워지자 엘 카스미 선생님이 손을 들어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이, 세이드.’라고 말이에요. 얼마 동안 그분은 우리를 가리키며, 그들의 말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엘 카스미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동안 터번을 쓴 남자는 선생님에게 더욱더 다가갔습니다. 그분이 말을 마치자 오른쪽 손을 가슴에 얹고는 ‘아, 물라시여, 여정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용서하시오.’라고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아랍 어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후에 말 머리를 돌려 사막의 중앙을 향해 달리더군요. 남자들도 바깥의 대형을 풀어 그를 따라 말 머리를 돌렸습니다. 그들이 멀어지자 엘 카스미 선생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더군요. ‘인생의 젊은 시절에는 이런 사막이 그런 것처럼 항상 평평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평평함은 종종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고원들도 숨기고 있지. 중요한 것은 그 보이지 않는 고원을 지혜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란다. 이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건 인내와 지혜를 모아야만 할 수 있다.’ 그러고는 서쪽으로 말을 몰았습니다.” --pp.142~143 중에서
“사실상 모든 귀족은 상처받은 사람들이란다. 아들아, 귀족의 부인들은 더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지. 아이를 낳아 키우면, 귀족들이 아이들을 데려다 전장에 넘겨 버리지. 그들도 상처를 입어. 우리도 그렇고, 이곳의 호족들은 모두 희생양이야. 함쉬오울루 유수프 성주의 외아들은 물론이고, 꽤 많은 호족 아들들이 군주가 벌이는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단다. 네 아버지와 유수프 성주의 아들은 친구였단다. 종종 우리에게 놀러 오곤 했지. 또래였어. 그가 올 때면 자네 왔나 하고 좋아했단다. 부드러운 천성, 웃는 얼굴에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지. 얼굴이 어찌나 순수했는지. 그를 볼 때면 이 아이는 누구에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곤 했어. 순수함은 전쟁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었어. ‘결국 죽이지 못해서 죽임을 당했다.’고 하더구나.” ---p.224 중에서
“우리보다 더 깨달은 사람들이군. 물론 그 사람들에게 대단한 건 아니겠지. 왜냐하면 많은 일들을 우리보다 먼저 겪었으니까. 그 대단하다는 예니체리 부대를 보게. 자신들은 물론이고 오스만 왕조를 난국으로 몰아넣었지. 파디샤가 그들 손에서 탈출하려고 하는데 예니체리는 파디샤 목을 원하고 있어. 파디샤가 그 문제만 해결하고 나면 칼을 우리에게 들이댈 거야. 비록 기마병들이 총리와 그리 사이가 나쁜 것 같진 않네만, ‘으악’ 하면 모두 물러갈 테지만 그래도 지난 수년 동안 총리는 별의별 일을 다 겪었어. 불똥이 우리에게 튈까 봐 걱정이야. 자네도 우리가 프랑스처럼 모든 것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제밀?” “우리는 개혁한다 해도 프랑스처럼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주님, 그들에게 개혁은 다른 뜻을 의미하지요. 우리는 아직 멀었어요. 그 사람들이 ‘민주주의’라고 하는 게 여기에서는 썩어 없어졌어요. 파디샤가 그만큼 개혁을 지지함에도, 그 말이 효력을 발생할 의회가 소집될 수 있을까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제밀?” “그렇게 보입니다, 유수프 성주님. 우리 종교는 가톨릭처럼 진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센 강을 피로 얼룩지게 하겠지만, 우리는 아마 바다 삼면을 피로 물들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