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조선 수군의 통제사 이순신인가?” 소 요시토모가 나타나면서 이순신에게 물었다. “네 이놈들, 내가 바로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조그마한 흐트러짐조차 없었다. “통제사, 죽음이 두렵지 않으시오.” 소 요시토모가 이순신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순신은 칼을 조용히 뽑았다. 그리고 그 칼에 새겨있는 문구를 바라보았다. ‘一 揮 掃 蕩 血 染 山 河, 일 휘 소 탕 혈 염 산 하.’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이순신을 제거하라.” --- p.21
원균은 항상 원칙만 고집하는 이순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운주당을 나갔다. 이순신도 원균이 말한 의미를 알았다. 하지만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진중 과거에 참여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진중의 군량미는 떨어지고 전염병이 크게 번지고 있었다. 조정이 약재와 군량미를 보내지는 못할망정 진중 과거를 실시한다고 하니 이순신은 가소로운 감정이 들었다. 이순신은 전주의 진중 과거에 참여하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는 군사들의 사기를 위해 한산도에서 수군 단독으로 과거를 실시하게 해달라는 장계를 조정에 올렸다. 조정은 이순신의 장계로 발칵 뒤집혔다. --- p.56
“통제사, 조정의 권고대로 수군을 폐하고 육군 권율 도원수에게 합류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판옥선 12척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통제사가 더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이순신은 한참 동안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설에게 화를 낸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배 수사, 이 몸은 곽란을 앓고 있어서 그런지 그대의 말에 토할 것 같소. 배 수사의 의견이 정 그렇다면 혼자서 도원수에게 합류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소. 하지만 그대 혼자 떠나시오.” “통제사, 이 몸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런 말을…….” “배 수사,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소. 난 숨을遁 곳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을死 곳을 찾고 있소.” “숨을 곳이 아니라 죽을 곳을 찾는다. 죽을 곳을…….” --- p.146~147
“아니 이 사람아. 자네는 우리 수군 최고의 조방장일세. 무슨 사연이 있는가?” “소장, 밤마다 칠천량에서 죽은 부하들이 꿈에 나타나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날 저도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혼자만 이렇게 살아있으니…….” 김완은 울먹이면서 눈물을 훔쳤다. 이순신의 막사에 정적이 흘렀고 여기저기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순신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내 자네를 충분히 이해하네. 자네가 그만큼 부하들을 사랑했던 게야. 아쉽지만 육지에서 이 전쟁이 끝날 수 있도록 힘써주게.” “통제사, 흑흑…….” 통곡하는 김완을 이순신은 힘껏 안았다. --- p.220
선조는 적을 평정한 것은 오직 명나라군의 힘이고 최고의 공은 명나라군을 참전하게 한 자신과 신하들에게 돌렸다. 적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장수들은 선무공신에 18명만 올렸고, 왕을 따랐던 조정 대신들과 내시들은 호성공신으로 86명을 올렸다. 자신의 가산을 털어가며 분연히 일어났던 곽재우, 정인홍, 김면, 조헌, 김천일, 고경명, 정문부 등 의병장은 한 명도 공신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대신 말의 고삐를 잡았던 천민과 노예, 명을 전달하는 내시까지 호무공신에 이름을 올렸다. 선무공신 1등급에 이순신과 권율과 동급으로 올라온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원균이었다. 선조는 칠전량의 패전으로 조선 수군을 궤멸시킨 원균을 끝까지 감싸 안았다. 전쟁이 끝나고 산으로 들어간 홍의장군 곽재우는 공신 선정을 듣고 왕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비웃었다. ‘후세에 비웃음을 남긴 것이 여기에 이르러 극에 달하였구나. 부패腐한 그들만의 나라國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