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낸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진실이 우리에게 어떤 위안을 주던가요? 굴뚝 위에서 포효하는 곰처럼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밤, 진실이 도움이 되던가요? 침실 벽에 번개가 번쩍거리고 빗줄기가 그 긴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두드릴 때는 또 어떤가요? 전혀 쓸모가 없지요. 오싹한 두려움이 침대 위에서 당신을 얼어붙게 만들 때,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앙상한 뼈다귀 같은 진실이 당신을 구하러 달려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겠지요. 그럴 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이야기의 위안이지요. 거짓말이 주는 아늑함과 포근함 말이에요.
--- p. 14
죽은 자의 무덤을 보살피듯 나는 책을 보살핀다. 책을 닦아주고, 작은 흠집을 보수하고, 말쑥한 상태로 유지한다. 날마다 나는 책을 한두 권 뽑아서 몇 줄, 몇 페이지를 읽으며 죽은 자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지게 한다. 죽은 작가들은 자신들의 책이 읽혀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까? 날카로운 한줄기 빛이 그들의 어둠을 가를까? 자신의 책을 읽는 누군가의 섬세한 손길에 그들의 영혼이 동요할까? 그러기를 바란다.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것일 테니까.
--- p.30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네. 이야기는 마치 가족과도 같은 거야. 우리가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그들을 잃었다고 해도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 있으니까. 그들에게서 멀어지거나 등을 돌려도 가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야. 이야기도 마찬가지라네.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는 법이지. 언제 들려줄 텐가? …… 자네가 원한다면 아무 말도 안 해도 좋아. 하지만 이야기는 침묵을 좋아하지 않아. 이야기에겐 말이 필요해. 말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엔 죽어버리고 말아. 그리고 영원히 우리를 따라다니지."
--- pp. 416~417
나는 비다 윈터의 전기를 출판하지 않기로 했다. 이 세상은 그 이야기에 열광하겠지만 이제 그 이야기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애덜린과 에멀린, 불과 유령의 이야기는 이제 오릴리어스의 것이었다. 묘지의 무덤들도 그의 것이었고 그가 달력에 표시할 수 있는 생일도 그의 것이었다. 진실은, 세상에 낱낱이 드러내지 않아도 이미 그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와 카렌은 과거의 페이지를 넘기고 새로운 출발을 할 것이다.
--- p.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