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줄지어 심어진 나뭇가지마다 희붐하게 불을 밝힌 듯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절정에 이르러 이제 낙화만을 남겨둔 꽃들이 만개했다. 시원한 밤바람이 건듯 불 때마다 분홍빛 꽃잎이 바람결에 너울거리며 어둠 속으로 하늘하늘 잠겨 들었다. 쾌적한 밤공기를 맞으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모두 그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고 즐기느라 바빴다.
그러나 막 택시에서 내린 강지혁 교수는 밤풍경 따위엔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번화가 뒤편의 외진 골목길을 부지런히 걸어갔다. 밤공기에 고소한 닭튀김과 기름 냄새가 배어들자 그의 얼굴에는 조급함마저 더해졌다. 그러나 입가에 걸린 것은 명백한 미소였다. 그립고 반가운 사람을 만나리라는 기대감이 더해진 그 미소의 기저에 깔린 것은 열망 혹은 열기였다. 몹시 뜨겁고 강렬한.
이윽고 자신의 목적지, 간판도 제대로 달려있지 않은 허름한 치킨집 앞에 선 지혁은 망설임 없이 낡은 문을 잡아 당겼다. 그 안에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흥분과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덜컹, 얇은 유리가 떨렸다.
“어서 오세요.”
힘찬 걸음으로 조도가 낮은 조명 탓에 어둑한 실내로 들어섰다. 공기 중에 오래된 기름 냄새가 배어 있을 만큼 오래된 치킨집이었다.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자리에 앉으면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가려서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 입구 카운터에 지혁의 아내, 시윤이 서 있었다. 그를 보자 그녀는 길가의 꽃보다 더 환하고 예쁘게 웃으며 장난스러운 인사를 건넸다. 그녀를 발견한 그 순간부터 지혁의 얼굴에도 감출 수 없는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민시윤.”
단 세 글자,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지혁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의 표정을 지었다. 그의 음성에는 켜켜이 쌓아놓았던 그리움과 짙은 애정 그리고 비로소 그녀를 만났다는 만족감이 잔뜩 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