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니까! 이 정도도 힘들어서 못 걸으면 밥숟가락 놔야지. 당신은 거울이나 한 번 더 봐!”
“거울은 무슨….”
“어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 여사도 여자이긴 한가보다. 가방 속에서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신경이 집중 돼서는 입술을 움직이고, 옷매무새를 만지고, 머리도 단정히 하는데 빠져든다. 그 사이 카메라 액정으로 정 여사를 바라보던 김 선생은 뭐가 그리 흡족한지 조용히 동작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김 선생에게 있어 정 여사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도 같았다. 하지만 정 여사의 단장이 끝나자 괜히 호통을 친다.
“이런 제기랄, 입술 한 번 다시 그려! 먹을 게 없어서 입술연지를 먹는 거야?”
“네?”
김 선생의 호통에 정 여사가 얼른 입술연지를 새로 바른다.
“이젠 좀 나아요?”
“호박에 줄 그린다고 수박 돼? 그냥 찍어!”
“으이구!”
말을 던져놓고 김 선생은 ‘이럴 땐 어째서 말이 생각대로 나가지 않는 걸까?’ 하고 자신을 책망한다. 이럴 때 기분 좋게 한마디라도 건네면 정 여사가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고 생각이 드니 방금 전 던졌던 말을 냉큼 주워 담고 싶지만 이미 나간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들킬까 싶어 툴툴대며 말을 하는 김 선생이지만 정 여사는 남편이 유난히 퉁명스러워질 때면 그건 자신에게 쑥스럽거나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려고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전에는 그런 것에 서운한 적도 있기는 하였지만 오랜 세월 나름 남편의 언어를 해석하는 능력이 생기다보니 이제는 남편의 그런 말들이 달콤하게 들리기도 한다. 남편의 수줍은 마음을 이해하는 정 여사도, 카메라 액정으로 정 여사를 바라보며 구도를 재는 김 선생도 각자의 흐뭇한 감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반듯이 좀 앉아! 고개는 바른쪽으로 좀 세우고!”
“사진 한 번 더 찍다가는 사람을 아주….”
“입 다물고! ‘동치미’ 하면서 좀 웃어봐.”
“입 다물고 ‘동치미’를 어떻게 해요?”
“엉? 어디서 뭐라 말대꾸야! 그냥 해! 동치미!”
“동치미.”
“그래, 그래, 좋아 좋다고!”
동치미 하고 활짝 웃는 정 여사를 보며 여전히 새댁같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김 선생이다.
“이뻐요?”
“뭐가 이뻐! 자, 빨리 한 번 더! 동치미!”
“동치미.”
“그래, 좋아, 좋아 움직이지 말아. 자, 찍습니다. 하나, 두울, 서이!”
“됐어요?”
“아이고, 우리 정 여사, 잘 나왔네. 아주 잘 나왔어! 양귀비 같아요. 양귀비. 천하일색, 양귀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속마음과는 다르게 표현하던 김 선생이었지만 활짝 피어나는 정 여사의 환한 얼굴을 보자 기분이 좋아져 순간 무심결에 입에서 마음속 감탄이 튀어나온다. 의외의 칭찬에 놀랐는지 정 여사는 잠시 동안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더니, 이내 활짝 웃는다.
“무슨 양귀비까지.”
“잠깐만, 한 번만 더 찍자구.”
“그나저나, 당신은 안 찍어요?”
“말이 많아! 나는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다시 동치미 하면서 웃어봐.”
“동치미.”
“그래, 바로 그거야. 그대로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안 돼!”
이번엔 같이 찍으려는 듯 김 선생이 타이머를 맞춰 놓고는 비틀대는 힘없는 걸음으로 정 여사의 곁으로 서둘러 다가온다. 넘어질 듯 불안하게 자리에 앉더니 덥석 하고 정 여사의 손을 잡는다.
“왜 이래요? 망측하게….”
“어허, 꽉 잡어!”
얼떨결에 정 여사도 김 선생의 손을 꼬옥 잡는다. 오랜만에 다정하게 잡아보는 손이기에 좋아서… 꼭 잡은 두 손이지만 서로에게 전해지는 힘이 예전만 같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함께인 것이 좋아 둘은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애써 참으며 그저 가슴으로만 운다.
“꽉 잡아. 놓치면 죽는 거야. 꽉!”
“더 꽉!”
“꽉…!”
“조기, 조기, 빨간 불 보이지? 저기를 봐, 알았지?”
“네.”
“자, 하나 두울 셋, 동치미!”
“동치미”
찰칵.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