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몰라도 좋다. 그림과 이야기를 즐길 준비만 되어있다면.
김지은 (blog.yes24.com/astrud)
나는 『삼국지』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수많은 『삼국지』들과 그 파생물(?)들의 홍수 속에서, 단지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름 몇몇, 유명하디 유명한 일화 몇 개를 주워 들은 것으로 그저 만족하며. 널리 읽힌 책들에 꼭 따라 붙는 '…를 위한 필독서'라는, 강요 같은 그 말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고, 계속 '뭔가 속고 있다'는 듯한 느낌속에서 많은 인물들과 관계들을 머릿속으로만 그려 가며 긴긴 항해를 이어가는 것에 쉬 지쳐버린 까닭도 있었던 것 같고.
이 책을 선택한 건, 철없고 우스운 '오기' 때문이었다. 억지로라도, 누구처럼 이문열의 삼국지 10권을 책이 닳아버릴 정도로 읽어야만 인생을 알고 처세를 아는 거냐. 여러 도판들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충분하다고.
이 책은 삼국지에 대한 해석을 작품 내적인 곳에 찾지 않고, 당대에 삼국지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시작한다. 많은 도판을 과감하게 배치하여 마치 미술 도록을 보는듯한 느낌은 일반 인문학 책에서 느끼지 못하는 즐거움이었다. 우리나라 민화에서 느껴지는 어리숙한 듯한 그림, 일본의 우끼요에와 같은 목판화의 전통을 볼 수 있는 도판, 그 외에도 한·중·일의 예전 판본, 김용환·고우영 등 만화가들이 그린 도판까지 곳곳에 깃들어 있는 정성이 이 책을 선택한 것에 대한 기대를 충분히 채워주었다. 특히 현대 중국 화가인 유생전의 수채화 같이 유려한 그림들은 자꾸 책장을 되돌려 다시 보게 만들었다.
작품 해석의 매체로 삽화를 중심축으로 당대 항간에 유행하던 삼국지를 소재로 한 민화 등을 채택하여 읽는 삼국지가 아니라 '보는' 삼국지를 그려냈다. 이러한 점은 방대한 양의 삼국지를 읽어야 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장면 장면을 시각적 화면을 통해 인물의 성격,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게 한다. 중국, 일본, 한국의 그림을 통한 비교는 인접한 세 나라 사람들이 바라보는 등장인물, 상황 해석에 대한 이해 차이를 단숨에 알 수 있게 한다. 너무도 쉽게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작품 해석의 이해를 돕는 것이 책의 미덕이다.
삼국지에 문외한인 나도 주워들어 알고 있는 조자룡이 장판교를 헤치며 가는 장면, 적벽대전의 거대한 전쟁터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 때의 상황과 인물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생겼으며,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 영웅들을 어떻게 보았을까? 일본과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과 얼마나 다를까? 이러한 많은 의문에 이 책은 많은 회화 자료 특히 일본, 중국을 넘나드는 시각적 자료로 답한다. 우리나라의 그림은 과격한 표현보다는 천진하면서 해학적이다. 중국은 특유의 허풍이 강한 모습으로, 일본은 극단적이면서도 감각적인 필치로 우리와는 다른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판본들을 비교해가며, 다양한 그림들로 본 삼국지이기에 이 책은 어쩌면 '삼국지 매니아'에게 훨씬 더 걸맞는지도 모른다. 매니아들에 비해 내가 이 책에서 흡수한 내용은 턱없이 부족할는지도. 그러나, 1학년 다음에 2학년 교과서 배우듯, 그렇게 재미 없이, 주눅 들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 아닌가. 때론 신기하고 또 멋지고, 어떨 땐 웃기기까지 한, 그 그림들을 보는 재미에다 저자가 친절히 들려주는 이야기들로 충분한 기쁨까지 선사했으니, 이 책은 내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준 셈이다. 그러니 이 책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그 누구라도 두려워하지 말길. 나름 시답잖은 오기를 부리고 있던 나 같은 독자에게 오히려 이제 삼국지를 다시 시작해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를 주는 책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