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다 씨는 어깨만 살짝 움츠릴 뿐 대꾸하지 않고 대신 “그럼 건배” 하고 잔을 들었다.
“발전적인 해체니까.” 어머니가 나를 봤다.
“이건 끝이 아니라,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내일부터는 전부 휴가.” 오카다 씨는 또 그 말을 한다.
“휴가 좋죠.” 어머니가 바로 반응했다.
“그래, 나도 아빠도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내일부터는 휴가라는 기분으로.”
“난 딱히 휴가 필요 없는데.”
--- p.44
이 차는 훔친 차일까, 아니면 미조구치의 차일까.
경찰이 또 말을 잃는다. 조수석에 있는 오타가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얼굴을 비딱하게 기울이고 나를 봤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절대 도망 못 가, 하고 말없이 못을 박았다. 나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트렁크,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엥, 하고 미조구치가 당황한다.
“뭐가 들어 있죠?”
“글쎄. 최근에 열어본 적이 없어서. 시체라도 들어 있는 거 아닌지 몰라.”
--- p.131
오카다 군은 또 교무실로 불려 간 모양이었는데 보나마나 교장 선생님은 불꽃을 뿜어내고 미인 어머니는 따귀를 때리고 유미코 선생님은 ‘자, 자’ 하고 중간에서 말리겠지, 하고 상상했다.
그리고 “오카다 군은 문제아야” 하고 여자애가 말한다.
문제아란 대체 어떤 의미인지, 사실 나는 잘 모른다. ‘문제’아가 있으면 ‘대답’아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닐까, 오카다 군이 문제를 내면 다른 누군가 대답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발상이나 떠오른 정도다.
--- p.154
소중한 사람들이 잇달아 떠나간다는 공포심이 있었다.
교정을 바라보면 신체의 소중한 부위가 바람에 날려 사라져갈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아버지도 사라지고, 오카다 군도 사라지고, 유미코 선생님도 사라졌다.
“다 그런 거야.” 어머니는 말했지만 그 ‘다 그런 거’가 나는 무서웠다.
그래서 종종, 그 영화를 떠올렸다.
연인을 잃은 주인공이 마지막에 내뱉은 대사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지. 나에게는 아직 남은 시간이 있었어.”
그 말 그대로 나는 아직 열 살이었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다. 남은 시간이 아주 많았으니까.
이따금, 바캉스를 생각했다.
--- p.203
엘리베이터 홀까지 가는 길에 미조구치 씨는 “너, 날아도 8분이면 걷는 거나 다르지 않다고 했었지” 하고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나를 봤다.
“뭐, 2분 차이니까요. 큰 차이 없다는 소리잖아요.”
“얼마 전에도 말했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야.”
“무슨 말이죠?”
“2분밖에 차이가 안 난다지만 나 같으면 날 거야. 날 수 있으면 역시 기쁠 거 같잖아.”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
“들어봐, 날아가면 8분, 걸으면 10분, 메일은 한순간. 그렇다 하더라도 날 수 있다면 날아야 해. 그런 경험, 안 하는 게 손해지.”
“하아.”
“8분이고 10분이고 큰 차이 없다고 말하는 건 ‘어차피 인간은 죽으니까 뭐든 상관없어’ 하고 말하는 거랑 같잖아.”
“같지 않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지만 사는 방식은 중요한 거야.”
--- p.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