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기자, 광고 카피라이터, 홍보 등 줄곧 글 쓰는 업무에 종사했다. 이후 우리나라 금융 노동운동사에 관한 책을 다수 썼다. 덜 알려진 것을 발굴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데 관심이 많아 《우당 이회영》, 《올림푸스의 신과 영웅》 등 청소년?어린이 교양서도 여러 권 펴냈다.
로마 대화재 당시 기독교인들은 네로 황제의 권력 유지를 위한 제물이 되었다. 이 기독교인 박해 사건은 화재가 권력자들의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나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외톨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등, 20세기 후에 일어난 일본의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6장)과 놀랄 만큼 그 이유와 배경이 비슷하다. 그러나 네로의 계획은 실패했다. 궁극적으로 로마 시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시민들은 기독교인에게 반감을 가졌지만, 잔인한 처형 방법과 죽음을 맞는 기독교인들의 순교자적 태도에 생각을 바꿨다. 네로가 좀 더 치밀했다면 그의 의도는 적중했을지도 모른다. 마녀사냥에 성공하려면 아무리 전제 국가라도 권력자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동의하는 다수의 존재가 마녀사냥의 성패를 결정짓는 열쇠다. --- p.73,「2장 로마 대화재와 기독교인 박해」중에서
조선 시대 남성의 이율배반적인 민낯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또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희생된 여성들을 보듬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내쳤다. 사대부들이 떠받드는 유교는 인간의 도리를 추구한다. 삼강오륜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를 강조했다. 그중에 하나인 ‘부부유별’은 남편과 아내에게 각자의 본분이 따로 있으니 이를 잘 헤아리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유교를 이유로 여성들을 거부했으니 이보다 더 극적인 자가당착도 없으리라. 환향녀를 더욱 비극적으로 연출한 것은 시어머니들이다. 여성차별의 이념과 제도가 고착하면서 시어머니의 존재 가치는 ‘아들의 어머니’로 한정되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거세된 그녀들은 곧 조선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폐습의 잔병들은 조선이 멸망한 이후로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자니까……”라는 족쇄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 p.106,「3장 병자호란과 환향녀」중에서
‘개인숭배’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마르크스는 “아무리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어도 모든 사업, 모든 지도를 한 개인의 수중에 맡길 수는 없다.”라고 일갈했다. 그런데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개인숭배가 빈번히 발생했으니 땅속에서 마르크스는 어떻게 생각할까? 문화대혁명은 개인숭배가 빚은 참극이다. ‘공산주의 수호’를 짐짓 내세웠지만 실상은 마오쩌둥의, 마오쩌둥에 의한, 마오쩌둥을 위한 각본이었다. 그는 치밀하고 냉정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물러서고 공격할 시점을 정확히 알고 상대편을 철저하게 분쇄했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대타를 기용했다. 그 때문에 광란의 홍위병은 역사적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반면 중국에서 마오쩌둥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광기와 폭력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어림하는 데 충분한 자극이 된다. 특히 이 역사적 사건들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라면 더 깊이 있는 독서로 들어가기 전에 징검다리 삼을 만하다. 역사를 읽는 눈이 많아질 때, 인간의 비이성을 바로잡을 힘도 길러질 것이다. - 로쟈 이현우(서평가)
인류의 역사는 반복된 비극으로 가득하다. 이를 새삼 따져보는 것은 대중을 조롱하거나 냉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류의 어리석음과 아집을 제대로 직시하기 위해서다. 우리라고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우리도 거기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