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늘 아침, 시리얼 사발을 앞에 두고서
나는 고작 스무 살밖에 안 된 아가씨가
은퇴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나는 그저 너를 자극하고 싶었던 거야.
자살에 대한 내 질문은 난폭하기 그지없었어.
그래서 나는 사과 대신, 너를 위해 한 권의 책을 쓰려고 해.
진짜 문제는
지겨움이 아니라
허영심
이라는 것을 네게 증명하기 위해,
어제 내 가방에서 꺼냈으면 좋았을
그런 책….
허영심을 속이기 위한 방법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줄 책.
책이 미리 있었다면
아마 나는 네게 이렇게 속삭였을 텐데….
“이 책을 읽어봐. 무엇에 관한 것인가 하면,
죽음, 또는
삶.”--- pp.12-13
걸음을 멈추자 지하철 출입문이 열렸어. 지하철 안에서 한 부인이 졸고 있고, 한 남자는 〈프랑스 수아르〉지를 읽고 있다. 나는 걸음을 내디딜까 말까 망설이다가 플랫폼에 멈춰 서서 그들을 관찰했어.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들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더라.
출발 신호가 울리고, 자동문이 내 앞에서 닫혔어. 나는 이미 늦었는데, 무엇이 나를 붙들어놓은 걸까? 나는 가만히 멀어져가는 지하철을 지켜봤어. 그리고 다음 지하철을 탈 승객들이 플랫폼에 밀려들어왔지. 그중엔 나와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청년도 있었어.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어. ‘내가 그였을 수도 있을 거야.’
잼을 바른 빵조각을 떨어뜨려서 바닥을 행주로 닦느라 시간을 4분만 허비했어도 저 청년처럼 지금 이 시간에 오지 않았을까?--- p.20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노숙자가 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는 너에게, 나는 네가 틀렸다고 대답하겠어. 그리고 로또 종이에 네가 숫자 다섯 개를 제대로 표시한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지도 않을 것이며, 오줌이 배어든 종이상자 더미 위에서 잠든다고 해서 더 불행해지지도 않을 거라는 대답도 하겠어.
그것은 이미 네. 안.에. 있 어.
네게서 너의 소시지를 찾아내봐,
너의 포도나무,
너의 붓을 발견해내.--- p.33
나는 ‘정지’를 누르고, 눈을 감았어.
시간은 언제나 우리의 발아래서 멈추지.
우리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시간의 절반을 삭감해버린다.
우리는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시간이 우리에게 예비해두고 있다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리곤 해.
여전히 눈꺼풀을 닫은 채로,
나는 이번에는 50년 후에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오늘 내게 속삭이면 좋았을 만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상상해보았어.--- p.58
철학자 클레망 로세는 결정적인 말을 했다.
“그러니까 기만적인 것은, 속임을 당했다는 감정이다.
사건은, 실현될 때 그저 자기실현을 했을 뿐이다.
그 사건이 다른 사건의 자리를 취한 것은 아니다.”
현실의 이 복제판을 부인하는 것은 실망을 싹부터 잘라버리는 것과 같아.
삶은 더 이상
(저버려진) 기대들, 즉 죽음에 맞서는 (패배한) 전투들에
관한 문제가 아닌걸.
삶은 절대적인 유일함 속에서 현실적인 것이 된다.
삶은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이야.
삶은 창문을 향해 돌린 너의 시선과 너의 몸이야.
삶이란 자기 자신을 잊는 것이다. 자기한테는 너무나 넓은 공간 속에서.--- p.77
1940년대 스타인 비비안 로망스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배우로서 절정에 올랐을 때 그녀는
프랑수아 샬레라는 기자와 인터뷰를 해.
그녀는 자기는 이제껏 생각 없이 살았으며,
심각한 자동차 사고 이후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어.
비비안은 잠시 숨을 돌린다.
샬레가 그녀에게 당신은 성공했느냐고 물었어.
그러자 그녀는 천천히 대답했지.
“글쎄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달려 있죠. 나로서는, 성공이란 삶 속에서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것이에요. 나는 대부분의 존재들이 늘 아주 외롭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큰 문제가 되는 게 바로 그것이에요.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지 고독을 피하려 애쓰는 것 같아요. 사랑을 통해서도, 어떤 직업을 통해서도….”
그녀는 이 아름다운 문장을 반복한다.
“나로서는, 성공이란 삶 속에서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것이에요.”
--- pp.8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