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를 찾으면 단종이 무섭도록 외로운 나날을 피눈물로 얼룩지게 하면서 귀양살이를 했던 자리임을 알리는 유지비가 비각 안에 세워져 있으며, 단종이 유배되었던 당시에 세워놓은 금표비가 지금도 남아 있어 오늘날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이 금표비에는 '동서 300척, 남북 490척'이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당시 조정에서는 단종으로 하여금 이 공간 안에서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염격하게 행동범위를 제한 했던 것이다.
단종은 이 곳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그해에 홍수가 져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자 처소를 관풍헌으로 옮겼다. 관풍헌은 이 고을 객사로 사용된던 건물로 영월읍 중심지인 영흥리에 위치한다. 관풍헌 동쪽에는 자류루라는 누각이 있다.본래의 누각 이름은 매죽루였으나 단종이 관풍헌에서 지내면서 이 누각에 자주 올라 '자규시'를 읊었다고 하여 자규루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달 밝은밤 두견새 울 적에
시름 못 잊어 누 머리에 기대앉았어라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 괴롭구나.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없을 것을
세상에 근심 많은 이들에게 으르노니
부디 춘삼월 자규루엔 오르지들 마오.
--- p.79-80
제1대 태조
조선 왕릉 답사의 첫번째 걸음으로 동구릉을 찾은 것은 그 곳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제도의 표본인 건원릉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청량리역에서 구리시 동구릉까지 직접 가는 버스 노선도 있고,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망우리 고개를 지나 구리시에서 퇴계원 방향으로 들어가면 동구릉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청량리에서 20-30분 정도 걸린다.
--- p.21
단종은 이 곳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그해에 홍수가 져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자 처소를 관풍헌으로 옮겼다. 관풍헌은 이 고을 객사로 사용된던 건물로 영월읍 중심지인 영흥리에 위치한다. 관풍헌 동쪽에는 자류루라는 누각이 있다.본래의 누각 이름은 매죽루였으나 단종이 관풍헌에서 지내면서 이 누각에 자주 올라 '자규시'를 읊었다고 하여 자규루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 p.79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