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과 절제를 몸에 익히고 참된 지혜를 갖춘 철학자를 양성하고, 그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그리는 유토피아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을 때 생산자?수호자?통치자 계급은 각각 절제?용기?지혜의 덕을 이루며 국가는 정의롭게 된다. 쉽게 말하면 생산자는 절제의 덕, 수호자는 용기의 덕, 통치자는 지혜의 덕을 잘 구현하여 개인과 사회가 온전히 제 기능을 다하게 되면 정의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절제?용기?지혜?정의는 사실 스파르타가 지향했던 덕목들이다. 결국 플라톤이 그린 꿈의 나라에는 현실의 스파르타가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구현되어 있는 것이다.
―23쪽, 〈스파르타여, 타락한 아테네를 구원하라!〉 중에서
불행히도 니체의 이러한 생각은 뒤에 히틀러에 의해 완벽하게 왜곡되고 말았다. 1889년, 45세의 나이에 완전히 미쳐버리고 만 니체는 5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둘 때까지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니체는 그를 숭배했던 여동생 엘리자베스에 의해 ‘니체 신화’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먼저 엘리자베스는 흩어져 있던 그의 저술들을 모아서 ‘니체 문서 보관서’를 열었다. 때에 따라서는 미친 니체에게 흰 사제복을 입혀 보관서 한쪽에 ‘전시’해 놓기까지 했다. 그뿐 아니라 지독한 유대인 혐오주의자였던 그녀는 니체의 메모를 모아 자기 입맛대로 편집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엘리자베스는 심지어 히틀러에게 “니체가 말한 ‘초인’은 바로 당신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192쪽, 〈히틀러를 위한 철학자?〉 중에서
무력은 싸움할 때는 요긴한 수단이지만 평화로울 때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사회를 유지하려면 힘깨나 쓰는 사람보다 머리와 수단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거기다 백성들의 삶을 올곧게 잡아 주고 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사상이 있어야 한다. ‘무력보다는 문치를!’ 한나라 초기의 시대적 요구는 이랬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의 가르침은 둘도 없이 적당한 사상이었다. 공자는 폭력을 혐오했다. 사랑과 분수에 맞는 처신을 강조하여 알아서 윗사람을 존경하고 스스로의 처지에 만족하게 하는 유가의 주장은, 겁먹을 민중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뿐만 아니라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었다.
―58쪽, 〈도덕과 의리는 한 제국의 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