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랬소?” 부황으로 누렇게 부어오른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과 함께 황바우는 이마를 찌푸렸다. 두 줄의 깊은 주름살이 이마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사람을 죽였소.”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별로 참회하는 기색도 없는 것 같았고, 흡사 남의 일처럼 여기는 표정이었다. --- p.19
가난하고 고생스럽게 산다는 것이 어찌하여 그렇게 중요한 대상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는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항상 가난하고 고생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난하고 고생스럽다는 것이 오직 그들만의 책임이란 말인가. --- p.83
“그런디, 황바우 그 사람이 젊은 여자하고 제대로 부부생활을 했당가?” 누군가 이렇게 묻자 안경 낀 노인이 또 말참견을 했다. “저런 양반 봤나. 그 여자는 씨도 받지 않고 아들을 낳았나? 원 저렇게도 머리가 안 돌아가서야 어디…….” “허어, 모르는 소리. 그 여자는 처음 붙잡혔을 때부터 임신을 하고 있었다네.” --- p.128
“그런데 이야기가 갈라지는 것 같네요? 그렇게 안 느끼세요?” 해옥의 이 질문은 꽤 날카로운 것이었다. 병호는 홀린 기분으로 대꾸했다. “사실은 그래요. 그것이 두 갈래로 갈라지다가 나중에 하나로 합쳐져야 사건이 해결되는 건데, 그게 과연 가능할지는 더 두고 봐야지요.” 병호는 괜히 그녀에게 이야기해 주었다는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그녀가 흥분해 있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기분이 유쾌해졌다. “이건 정말, 종잡을 수 없겠네요. 갈수록 더 그럴 것 같지요?” --- p.144
병호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 집을 급히 빠져나왔다. 허탈감과 함께 마음은 급해지고 있었다. 지나간 20년의 기나긴 투망 속에 무엇인가 어렴풋한 것이 희끄무레하게 걸려들고 있음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양달수의 죽음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이번 사건을 수사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