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기다려 봐. 제발 아직 가지 마, 페르민 기다려. 네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한 말이 아니야. 내게 화내지 마. 아직 시간이 일러. 제발, 가지 마. 네가 들려주고 싶은 다른 이야기를 해 봐. 다신 네가 하는 말을 가로막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그 뒤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해 줘. 강이 불어나 넘쳤는지. 아니면 그런 상태로 계속 흘렀는지, 너무 짙어 모든 것을 지워 버렸던 안개가 다시 걷혔는지 지금은 네가 자유로워졌는지……. 난…… 알고 싶단 말이야……. 페르민, 페르민……, 어디로 간 거야…….” 안토니오는 평소대로 불을 켰고, 서글프게도 페르민의 침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페르민이 이곳 감화원에 있는 동안 자유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나 자유를 얻은 페르민이 그 단어를 말하고 있었다. 안토니오는 그걸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수감되어 있었을 때 자유를 열망해야 말이 되지 않나? 이곳에서 자유를 열망했다면 페르민은 왜 그 말을 하지 않았던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지만, 납득할 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
“원장님이 넌 탈출하기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어. 이유가 뭐야?” “난 담장 건너편에서 사는 게 더 좋아.”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넌 바보 멍텅구리 같은데.” “바보 멍텅구리라고?” 페드로는 놀라워했다. “내게 붙여주는 새 이름이야? 그런데 어째서 내가 바보 멍텅구리야?” “탈출하고 싶어 하니까. 여긴 그럭저럭 괜찮아. 우리한테 다 있잖아. 담장 건너편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페드로는 고개를 저었다. “넌 이해 못 할 거야.” 그리고 안토니오에게 다시 말했다. “그럼 넌 이런 데서 평생 보내. 텔레비전에서 본 호랑이 기억나지? 너 그 호랑이 같아. 넌 겁쟁이가 되어 버렸어. 닭 한 마리에도 무서워서 벌벌떠는 겁쟁이 호랑이.” --- '본문' 중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소지품이 든 가방과 옷 옆에 나란히 앉았다. 바다에서 부는 부드러운 해풍이 그들의 얼굴을 간질이고 그들의 머리칼을 살랑살랑 헝클어 뜨렸다. 저 멀리서 지중해를 횡단하는 초대형 유람선이 떠가고, 그들의 머리 위로 소형 비행기 한 대가 광고문구가 실린 플래카드를 매달고 지나갔다. “이게 인생이야” 식상한 문구를 들먹이며 페드로가 탄성을 질렀다. “그래.”
텔레비전 화면 가득 호랑이가 보인다. 우리에 갇힌 커다란 호랑이는 먹이로 넣어준 닭 한 마리를 보고 벌벌떨다가 우리 밖으로 뛰쳐나오고 만다. 밀림에서 잡혀 와 오랜 세월 우리에 갇혔던 호랑이는 자신이 호랑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닭에게 벌벌떠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호랑이가 되어 버렸다. 페드로는 텔레비전을 보며 그런 호랑이의 모습이 불편하기만 하다. 우리가 아닌 우리 밖 밀림의 호랑이는 얼마나 멋있을까?
안토니오는 밥 먹여 주고, 공부시켜 주고, 산책하고, 잠잘 수 있는, 안락한 소년 감화원을 탈출하려는 페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그에게 ‘바보 멍텅구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페드로는 꽉 짜인 소년 감화원에서의 하루하루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데 소년 감화원의 잘 짜인 규칙이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라고 생각하는 룸메이트 안토니오를 이해할 수 없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호랑이가 떠올라 안토니오에게 ‘닭한테 벌벌떠는 호랑이’라는 별명을 지어 준다. 안토니오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페드로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혼자 먹던 밥, 혼자 걷던 산책, 혼자만의 공간 속으로 흑인 소년 페드로가 슬금슬금 침범한다. “어째서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자꾸만 하게 되는 걸까?” 그렇게 거부하고 밀어내는 사이 처음 안토니오의 방을 찾아왔던 것처럼 어느새 페드로가 안토니오의 가슴속에 파고들었다. 페드로는 안토니오에게 함께 탈출하자고 손을 내밀지만, 안토니오는 선뜻 그의 손을 잡지 못한다. 페드로가 탈출하던 밤, 안토니오는 페드로의 빈자리를 깨닫게 된다.
제도권 안에서 자신의 삶에 수동적이기만 했던 안토니오에게 페드로는 인생은 살아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이라는 숙제를 던져준다.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자신의 삶, 안토니오는 자신과 다른 페드로의 욕망을 보며 처음으로 자신을 삶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절망과 두려움으로 얼룩진 십대의 두 소년은 상대의 절망을 통해 자신의 욕망과 조우하게 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두 소년이 바라는 자유라는 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일탈이 아닌, 아주 사소하고 작은 변화였음을 알려 준다. 우리는《처음 만난 자유》를 통해 잃어버린 정체성을 되찾고, 잊고 있던 진정한 자유와 조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