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었고 앞으로 읽게 될 독자들은 활자들의 그늘진 눈동자에서 무엇을 읽어내려 할 것인가. 시대의 기압골이 깊어져가는 지금 ‘타는 혀’로 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띠게 될 것인가. 독자들과 함께 이 점에 대해 묵상하고 싶다. --- p.6
이 책의 제목을 ‘타는 혀’로 정한 것은 김현, 김윤식, 백낙청, 임화 등 이 책에서 논의되고 있는 비평가들이 문학과 삶의 자리에서 ‘타는 혀’의 날카로움과 뜨거움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들이었던 데서 비롯된다. 바꿔 말해, 이들은 평온한 침묵을 통해 문학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현장의 모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발언함으로써 자신의 문학과 삶 전체를 동시에 고양시켰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독자들은 이 책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의들이 이들의 비평적 업적에 대한 ‘경배와 찬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독자들은 그러한 예상이 정면으로 부정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당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 책이 이른바 ‘비판의 해석학’을 그 방법론적 토대로 하여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 p.7
한국적 현실의 모순을 간명하게 요약하자면 이른바 ‘연고주의’로 귀착된다. 인맥과 학맥, 지역주의로 분화될 수 있는 이러한 연고주의와 함께 ‘장유유서’로 요약되는 권위에의 복종 경향이 그 어느 사회보다도 만연되어 있는 것이 한국사회다. 근대적 문물과 제도적 장치로 표상되는 ‘기술의 근대성’이 상당 수준 성취되었으면서도, 정신의 독립성과 자유의지를 포함한 ‘해방의 근대성’은 체질화되지 않은 한국적 근대성의 분열증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제반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의 모순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 p.8
이 책에 수록된 논문을 써나가는 과정은 치열한 ‘논쟁적 대화’를 지속적으로 벌여나가는 과정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임화의 경우는 현재로부터 상당한 시간적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 문제가 안 되었지만, 다른 비평가들의 경우는 지금 현재까지도 학계와 문단에 여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거나 활동하고 있는 비평가라는 점에서, ‘논쟁적 대화’는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 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김윤식 교수의 비평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직후에 벌어졌던 일련의 상황들은 지금까지도 내 글쓰기를 검열하곤 하는 무의식적 상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연구를 지속하고자 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학문적 실천 과정에서의 ‘진실 추구’라는 문제 때문이다. --- p.12
이 세계는 고통스러운 곳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 너머의 유토피아로 나아갈 수는 없다. 때문에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곧 자기와 싸우는 일이다. 그 싸움을 문학을 통해 할 수 있다는 것이 김현의 평생의 신념이었다. 이러한 김현의 문학관은 ‘초월성이 내재한 현실(문학)’이라는 개념으로도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문학은 그 자체가 현실이자 신비로운 ‘절대’가 된다. 김현에게 신비로운 절대에의 모든 추구는 문학으로 환원된다. 절대인 문학은 김현의 의식 속에서 결코 억압하지 않은 꿈이며 욕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현실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김현의 문학에의 열정은 더욱 심화된다. 왜냐하면 고통스러운 현실은 폭력세계인 때문이다. 이 폭력세계로부터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방법은 죽지 않는 한 문학에 매달리는 방법밖에는 없게 된다. 김현의 말처럼 욕망이 있는 한 문학은 어디서나 살아남기 때문이다. --- p.144
가장 문제적인 것은 한국 현대문학 연구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임에 분명한 김윤식의 비평적 사고가 그 자신 그토록 치열하게 비판해 마지않았던 ‘현해탄 콤플렉스’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현해탄 콤플렉스조차 극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 문학사를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과도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학자적 엄격성과 진실 추구에의 견결함을 지켜야 될 위치에 있는 그가 일본 문학비평가의 저작을 표절하여 자신의 독창적인 저술인 양 글을 쓰고 책으로 묶어냈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로도 용인될 수 없는 문제이다. 기이한 것은 일본 문학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았을 일문학자들이나 한국의 국문학자들은, 왜 단 한 번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 p.340
백낙청의 이러한 급진적 전통단절론은 우리의 문학사에 대한 정도 이상의 평가절하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앞의 지문에서도 간접적으로 암시받은 것이지만, 백낙청은 이른바 고전문학의 영역에 속하는 문학작품의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가 하면, 그나마 근대문학사에서 존중받아야 할 작가로는 1910년대의 이광수만이 존재한다는, 그리하여 이광수 이후로부터 1960년대 당대까지의 작품들은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제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