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샘심리상담연구소(주) 대표. 상담심리 전문가인 그는 좋은 부모 역할과 자녀 문제, 대인관계, 자기계발 등으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나’를 찾아주는 일을 천직으로 삼고 있다. 숙명여대에서 식품영양학과 아동복지학을, 가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홍익대 일반대학원 교육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덕성여대와 한세대 등에서 강의했다. 또한 청소년 상담 및 H.T.P(건강한 부모 역할 훈련) 강사로 활동하는 한편으로, 서울시 재난피해 심리상담 전문위원, 근로복지공단 심리상담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자녀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바탕 위에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양육 태도, 마음을 돌보는 엄마의 말, 장점을 찾아주는 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좋은 엄마로 산다는 것》 은 이제껏 3천 명 이상의 부모와 아이들을 만나온 경험과 양육의 지혜를 담은 첫 책이다.
상아는 제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엄마도 힘들어. 가족끼리 그것도 이해 못 해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도 혼란스러웠답니다. 그리고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또 그런 자신이 못마땅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나이의 상아는 엄마가 잘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해할 수 없다고 자기의 진심을 말할 수 있었을까요? 가족인데도 이해 못 하는 자신은 가족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하게 된다는 딜레마에 부딪치게 되고, 상아는 그런 자신에 대해 다시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별 의미 없이 넋두리로 하는 말만으로도 자신을 단정 지어버립니다. 부모의 잣대로 자기를 판단하는 것이지요. 엄마를 이해 못 하는 자신은 나쁜 아이가 되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잣대로 자기를 평가한다」중에서
“넌 원래 똑똑해.”, “넌 타고난 머리가 있어.”처럼 선천적이거나 기질적인 부분에 대한 칭찬을 하면 아이들은 당장에는 기분이 좋은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의욕을 잃게 됩니다. 선천적인 자질에 대한 칭찬이 좋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에 대한 자기 통제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는 변하지 않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말이지요. 어떤 행위의 결과만을 칭찬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칭찬에서 아이가 받아들이는 것은 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착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칭찬을 먹고 자란다」중에서
어린아이의 감정 표현이 제대로 수용되지 않으면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결여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저 누르거나, 터뜨리는 양 극단적인 방법만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된 아이에 대해 부모 혹은 양육자는 아이가 말이 없다거나 또는 지나치게 난폭하다는 말씀을 합니다. 양육 환경이 아이의 난폭성과 소극적 태도를 키웠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 그 아이만 나쁜 아이, 부족한 아이 취급을 받는 것이지요. ‘난폭한 아이’, ‘입을 닫은 아이’는 한 아이 안에서 표현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마음속에 꾹 담아놓고 있다가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때에야 폭발하듯이 마구 쏟아내는 것입니다. ---「자녀의 마음을 잘 돌봐주는 엄마」중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자주 비난받고 꾸중 들은 기억 때문에 힘들어했습니다. 누군가 나를 잘못했다고 비난하거나 꾸중하는 듯한 말을 하면 어릴 때처럼 자기도 모르게 위축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엄마가 무섭고 두려워서 말도 못 하고 꾹 참았던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아 작은 자극에도 영향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녀는 딸 정도의 상대에게조차 다시 상처받는 자신의 모습이 참 싫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비난한다고 생각되는 상대(딸)에게 도리어 화를 던져버리기도 하지요. 과거 어렸을 때에 영선 씨가 당해야 했던 것처럼 그녀의 아이 또한 당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엄마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대물림하듯 자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면 엄마는 얼마나 기가 막힐까요? ---「아이의 문제가 실은 내 문제일 수 있다」중에서
엄마들에게 아이와 대화를 많이 나누시라고 하고, 나중에 확인해보면 다들 그렇게 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답답해하고 감정이 해소되었다고도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가 “엄마, 친구들이 나랑 안 놀아줘요!”라고 하면 엄마들은 대개 “왜, 무슨 일 있었니?”, “네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라고 물으십니다. 친구가 안 놀아줘서 속이 상해 막 들어온 아이에게 엄마는 이 같은 질문 공세를 해댑니다. 사람은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아이 또한 은연중에 엄마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질문과 대답에 열중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할 순간을 놓치게 되지요. 그렇게 아이의 감정은 무의식중에 뒤로 밀려납니다. ---「방문을 잠그는 아이의 마음을 열어주려면」중에서
엄마가 아무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도 무엇을, 어떻게 주면 좋을지 그 방법을 잘 모른다면 엄마의 마음은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엄마 자신이 감정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쌓아두고 있다면 그 같은 부정적인 정서와 태도는 다른 무엇보다 먼저 자녀에게 전달됩니다. 내 아이에게 웃음을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주려면 먼저 엄마 스스로가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삶의 갖은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일과 가족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하지요. 아이들은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보며 배웁니다. 또 닮습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진다」중에서
착한 것은 늘 좋을까요? 착하게 행동하는 게 늘 옳은 선택일까요? 저는 착한 것이 항상 긍정적이지는 않다고 봅니다. 착하다는 것은 상대나 주위의 평가이지요. 그래서 자신을 한참 죽이고 남에게 잘 맞춰주는 것을 상대방 입장에서는 착하다고 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한없이 ‘착하기만’ 한 사람 옆에는 악역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요. 아빠가 너무 착하다 보니 그녀는 살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는 삶을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시댁의 요구를 뭐든 다 들어주려는 아빠에게 엄마는 쌈닭처럼 사납게 맞섰습니다. 이들 부부는 양 극단의 방식을 선택해 삶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자신과 가족을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문제 해결 방식이 무조건 회피였다면, 엄마의 방식은 무조건 소리 지르기, 화내기였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국 두 사람은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