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Game Programming Gems 5의 번역서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이 시리즈의 모태가 된 Graphics Gems 시리즈가 1995년까지 총 5권이 나왔는데, 정확히 10년 후인 2005년에 이르러서 GPG 시리즈 제 5권의 원서가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Graphics Gems와는 달리 GPG 시리즈는 5권을 넘어 계속 이어질 예정이고, 번역서도 그럴 것입니다.
한 시리즈가 5권까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시리즈의 번역서가 5권까지 나온 것 역시 아마도 유례가 없는(적어도 프로그래밍 서적에서) 일일 것입니다.
1권부터 5권까지의 역자로서 커다란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출판 시장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시리즈 기획을 유지한 정보문화사 관계자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물론 이 시리즈가 지속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저자들과 독자들일 것입니다. 저자들이 없었다면 책이 아예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독자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시리즈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독자들의 성원이 꼭 책의 판매량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판매량과는 상관없이, 온라인 포럼 활동과 서평 등을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리즈의 내용을 자신의 프로젝트에 직접 적용함으로써 이 시리즈가 게임 개발 산업의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야말로 가장 큰 성원일 것입니다. 번역서 출판에 관련된 모든 분들을 대신해서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리고, 국산 온라인 게임에는 크레디트라는 게 없다는 괴담도 있지만, 온라인 게임이든 패키지 게임이든 언젠가는 크레디트에 "감사: GPG 시리즈"라는 문구를 실은 게임이 생겨난다면 기쁘겠습니다(이미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자들 이야기를 하자면, 드디어 한국인 저자의 글이 GPG 5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GpgStudy 포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시는 배현직(imays) 님입니다. 배현직 님의 글은 6.4 "빠르고 효율적인 원격 프로시저 호출 구현"으로, 개인적으로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친절하고 충실한 글이라고 평가합니다. 한국인 저자가 영문으로 글을 쓴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닌데, 훌륭한 글이 실려서 저까지 자랑스러웠습니다. 제 졸역이 글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번역의 질을 제외할 때 GPG 번역서의 가장 큰 약점은, 원서 편집자, 저자들이 느끼는 기술의 흐름이 국내 게임 개발 현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국내의 장르 편식이나 패키지 게임 개발의 부재와 맞물려서 “대단해 보이는 글들은 많지만 딱히 써먹을 게 없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실내 환경의 1인칭 슈팅이나 액션 게임, 본격적인 스포츠 게임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리고 평균적인 PC를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게임들이 많은 상황에서 최신 그래픽 카드 기능을 이용한 진보적인 렌더링 기법이라던가 물리 기반 캐릭터 애니메이션 같은 주제들은 그림의 떡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약점이 장점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리즈에 실린 이국적인(?) 주제들에 고무를 받아서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나 기법에 도전하는 개발자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GpgStudy 포럼에서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 패턴, 구조 같은 일반적인 프로그래밍 주제에 대한 논의가 그래픽이나 물리, AI 같은 구체적인 주제에 대한 논의보다 활발한 현상도 위에서 지적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GPG 4에서 좀 줄어들었던 '‘프로그래밍 일반' 섹션이 이번 GPG 5에서는 다시 원래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점입니다. GPG 4에서 프로그래밍 일반 섹션의 글은 14개로, GPG 3의 17개에 비해 3개가 줄어 든 수준이었는데, GPG 5에서는 다시 17개가 된 것입니다. 어쨌든, "자신의 당면 과제에 맞는 글을 읽고 활용한다"를 기본으로 하되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배운다"를 곁들이는 독서법이 유효할 것입니다.
게임 개발자 공동체의 상황은 GPG 4의 역자의 글을 쓸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게임 개발자들의 블로그 활동이 이어지고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침체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KGDA 사이트의 침체는 상당히 가슴 아픈 일이지만, KGDA 활동에서 웹 사이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KGDA가 주관하는 여러 오프라인 행사들의 질적인 발전에 주목을 하는 게 합당할 것입니다.
주목할 만한 새 사이트로는 3D 그래픽, 게임과 관련된 문서 이상의 자료(스크린샷, 동영상, 소스 코드, 실행 파일 등)의 집결을 목표로 하는 DexGame(http://www.dexgame.com/)과 게임개발자료 도서관을 표방하는 Galexandria(http://www.galexandria.org)가 있습니다. 게임 개발자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발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DexGame이 생겨서 정말 다행입니다.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그리고 Galexandria 역시 지금은 활동을 중단한 ‘아티클 전문 사이트’ Spirit3d.net과 여전히 운영되긴 하지만 공동 번역 작업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 GpGiki(http://www.gpgstudy.com/gpgiki/)의 좋은 대안이 될 것입니다.
GPG 4가 나올 당시와 비슷하게, 국내 게임 산업의 전망은 한편으로는 밝고 한편으로는 어두운 상황입니다. 기존 온라인 시장의 포화와 새로운 콘솔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창조의 부재 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라는 정도의 예상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게임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과 수단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게임 프로그래머들"이라는 말이 맞는다면 이 GPG 시리즈의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게임 시장에 뭔가 변화가 일 것은 확실하나 그 변화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투명해서 고민하는 개발자라면, 일단은 이 시리즈를 통해서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실력을 쌓아 나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번역서를 내면서 조금 더 시간을 들였다면, 원고를 한 번만 더 검토했다면 하는 후회를 느낍니다. 특히 이번에는 한국인 저자의 글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번역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컸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오역, 오타를 발견하셨다면 GpgStudy (http://www.gpgstudy.com/)에 보고해 주세요.
올해에도 멋진 게임 만드시길!
--- 역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