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에 태어나 영남대학과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창원대학 교수를 거쳐 영남대학 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냈고 미국 하버드대학, 영국 노팅엄대학,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법학을 연구했으며 일본 오사카대학, 리츠메이칸대학, 고베대학에서 강의했다.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개혁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썼고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모리스, 고흐, 고야, 도미에, 카프카, 오웰, 케스트너, 프롬, 소로, 니체 등의 평전을 썼고 일리히, 푸코, 사이드, 페인, 북친 등의 책을 번역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굳이 한마디로 어떤 주의라고 말한다면 ‘시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가장 작은 시(市) 규모인 인구 6만 명 정도의 피렌체라는 도시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이 자치를 하는 정치’가 마키아벨리가 추구한 시민정치였다. 따라서 그것을 국가주의나 국민주의나 국민국가주의로 부르기는 어렵다. 그가 이탈리아의 통일을 원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모든 도시가 하나의 국가로 완벽하게 합치는 통일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고 협조할 수 있는 연방과 같은 느슨한 형태의 통일이었다. (7~8쪽)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도덕이나 윤리 또는 종교에서 완전히 분리시켜 정치학을 근대 과학처럼 수립했다고 하는 서양 학자들의 주장이나 그런 주장을 맹신하는 한국 학자들의 이런저런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가 정치와 도덕 등이 서로 다르다고 얘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것들 상호간의 완전분리나 독립, 종속, 지배, 복종 따위를 주장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도덕, 윤리, 종교 등과 같다고 보지는 않았으나 정치에서 도덕이나 윤리 또는 종교가 갖는 일정한 역할을 인정했다. (29~30쪽)
무솔리니의 전기를 쓴 라우라 페르미가 지적한 것처럼, 파시즘이 마키아벨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솔리니가 마키아벨리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무솔리니는 마키아벨리를 “정치학의 모든 스승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고 격찬하면서 자신의 스승으로 삼았다. 무솔리니의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으나 어려서부터 그에게 자주 마키아벨리의 책을 읽어주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94쪽)
마키아벨리가 불륜의 관계를 맺은 상대 여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그가 55세에 만나 죽기 직전까지 3년간 사랑한 여배우 바르바라 살루타티 라파카니(Barbara Salutati Raffacani)였다. 그 여인도, 마키아벨리도 서로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애인을 두고 있었다. 라파카니는 마키아벨리의 마지막 희곡 《클리치아》에 나오는 여주인공 클리치아의 모델이다. 남주인공 니코마코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분신이다. (186쪽)
마키아벨리는 언제나 자신이 현실에서 겪은 직접경험과 과거의 역사로부터 얻은 간접경험에서 출발해 자신의 사상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현실주의적인 경험주의자였다. 《군주론》이나 《로마사 논고》는 물론이고 그의 모든 글은 자신의 직접경험과 역사를 통한 간접경험에서 얻은 교훈에 근거하여 씌어졌다. 그에게 역사는 이미 끝나버린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 경험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의 실제였다. (243쪽)
마키아벨리는 “덫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여우가 될 필요가 있고 늑대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사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뿐, 군주가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여우나 힘을 쓰는 사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음을 주의해야 한다. 여우는 현명함을 상징하고, 사자는 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리를 규제하는 위엄성을 상징할 뿐이다. 방금 인용한 마키아벨리의 말은 정책과 치안의 원리에 관한 주장에 불과하지, 특별히 사악한 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248쪽)
이 세상에 마키아벨리만큼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고 난 뒤에도 약 5백 년이 지나는 동안에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평가를 받아온 인물이 또 있을까? 악마의 화신이라는 극단적인 부정의 평가부터 정치학의 아버지니 민주주의의 아버지니 하는 극단적인 긍정의 평가까지 서로 대립되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금도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떤 하나의 견해로 통일돼있지 않고, 앞으로도 그렇게 통일되기가 어려울 것 같다. (354쪽)
《군주론》에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부분을 중심으로 그 책의 내용을 냉정한 정치가의 통치방법이나 사업가의 관리기술로 이용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단순히 문자에 구애되지 않고 그 책의 역사적 배경이나 취지나 목적을 알고서 읽으면 정작 저자인 마키아벨리 자신은 그런 마키아벨리즘과 무관하고, 사악하지도 않았으며, 사악한 주의를 가르치지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도리어 그의 진심은 이탈리아를 사랑하여 그 나라에 군주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을 세우고자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