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조사사업도 끝나 가고, 의병도 씨가 말랐으니 이제 조선 땅에 대일본 제국의 태평세월이 시작된 것 아닙니까?” 하시모토는 노골적으로 아부하며 쓰지무라에게 두 손으로 술잔을 올렸다. “꼭 그렇지도 않네. 토지조사사업이 농토는 거의 끝났지만 산이 많은 지역은 아직 멀었고, 그렇게 총칼로 엄히 다스리는데도 덤비는 자들이 끝없이 생겨난단 말일세. 그게 다 조센징들의 질긴 근성 때문이네. 조센징들은 당장 총칼이 무서워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를 일이네. 조센징들은 무식하지만 머리가 좋고, 어리숙한 것 같아도 눈치가 빠르고, 저희들끼리 잘 뭉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이야.” 쓰지무라는 하시모토 옆에 앉은 죽산면의 새 주재소장을 노려보듯 했다. “옛, 명심하겠습니다.” 새 주재소장은 앉음새를 똑바로 하며 고개를 절도 있게 꺾었다.
청년 시절에 읽은 『아리랑』이 좀 길다 싶어 딸아이에게 추천하기 어려웠는데, 어느 날 책장에서 꺼내 읽기 시작하더니 밤새는 줄 몰랐다. 열두 권을 읽기에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서 길어도 자꾸만 읽게 돼요.” 하던 딸아이의 흥분된 표정이 떠오른다. 이 책 『아리랑 청소년판』이었다면 좀 더 일찍 읽어 보라 권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출간되어 많은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아리랑』의 감동을 느낄 수 있어 매우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