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이 싱그럽고도 두툼한 초록빛으로 물드는 속에 단오가 왔건만 나뭇가지에 매는 그네를 찾기 어려웠고, 장터마다 벌이는 씨름판도 찾을 수 없었다. 공허는 험악해진 세상살이를 절감하면서 햇볕 속을 걷고 있었다. 사람들이 단오 쇠기를 작파해 버린 것은 다 토지조사사업 탓이었다. 땅을 마구잡이로 빼앗고 사람 목숨까지 마구잡이로 죽이는 판이니 누구든 명절을 쇨 신명이 날 리 없었다. 공허는 어둠이 깃들기를 기다려 신세호의 집을 찾아들었다. “아이고 스님, 무고허셨구만요. 그 일 후로 소식이 없어 걱정했구만요.” 신세호는 공허의 손을 덥석 잡을 만큼 반가워했다. “송 장군께서 안부를 전허시등만이라.” “아, 만주에 다녀오셨구만요?” 목소리를 낮춘 신세호가 반색을 했다. “예, 송 장군께서 전허시는 말씀이 있구만요.” 공허는 표정 없이 무거운 얼굴로 신세호를 건너다보았다.
청년 시절에 읽은 『아리랑』이 좀 길다 싶어 딸아이에게 추천하기 어려웠는데, 어느 날 책장에서 꺼내 읽기 시작하더니 밤새는 줄 몰랐다. 열두 권을 읽기에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서 길어도 자꾸만 읽게 돼요.” 하던 딸아이의 흥분된 표정이 떠오른다. 이 책 『아리랑 청소년판』이었다면 좀 더 일찍 읽어 보라 권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출간되어 많은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아리랑』의 감동을 느낄 수 있어 매우 기쁘다.